불특정 다수의 면전에 대놓고 설교-그것도 지독히 현학적인 동시에 감각적인-하기를 즐기면서도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런 사람이 여기 있고, 우리는 그를 '브라질의 연금술사'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잘 팔려나가는 작가들 중에서 파울로 코엘료는 녹록치 않기로 따지면 단연 으뜸일 것이다. 그 이유는 평생을 두고 보아도『어린 왕자』의 내용이 볼때마다 새롭다는 유명한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한다. 파울로 코엘료가 꽤나 노련한 "멘토"이기 때문에, 그의 책이 제시하는 이정표는 아무리 퍼내도 메마르지 샘물처럼 달콤하고 풍부하다. 책 시장에서는 언젠가부터 '스토리'에 공세에 밀려 '교훈'이 숨을 죽이고 엎어지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이기에 파울로 코엘료의 선전이 더욱 의미가 있다.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를 통해 전세계 수 많은 이들의 영혼을 울려대며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순탄치 않았던 그의 성장기가 얼마나 많은 보물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는지는 그가 쓴 작품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그것들은 하나같이 소설과 에세이, 처세서의 경계점에 교묘하게 걸터앉아 있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오로지 문장을 아름답고 쓸모있게 세공하는 기술 뿐이었다. 원석은 이미 그가 글을 쓰고자 마음을 먹었을 때 그의 인생 속에 촘촘히 박혀있었다.
이 글을 쓰던 당시 육십을 맞은 그가 자신의 내부에 숨어있는 여성성과 자비로움을 책으로 잉태한 것은 사실, 그간의 역사가 그녀들에게 자행해왔던 수많은 속박과 그릇된 편견들을 하나둘씩 거꾸러뜨리고 있는 여성들의 출현에 비하여 시기적으로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아직도 남아 있는 여성성에 대한 편견과 뿌리깊은 부조리를 걷어내는 문학적인 무기로서의 제 몫을 충분히 다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여성단체에서 회원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장하고 있지만, 이 책에 "패미니즘"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이는 것은 온당치 않은 듯 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여성"이 아니라 "여성성"이다.(실제로 파울로 코엘료도 이 책 전체-후기도 포함하여-에서 패미니즘이라던가 여성의 권익이라는 말은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이 책은 아직도 마녀를 혐오하는-혹은 두려워하는- 대다수의 남성이-혹은 소수의 여성이- 읽어야 할 듯하다. 이제 우리 모두가 마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녀들의 권능을 인정할 순간이 온 것이다.
"나에게 마녀란 직관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는 여성, 자신을 둘러싼 것들과 대화를 나누는 여성,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이다."
그 외의 이야기(Click)
'Read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브라질의 연금술사가 마'녀'를 낳아야 했던 이유 - 『포르토벨로의 마녀』 (0) | 2008/08/16 |
|---|---|
| 나를 아니? 몰라, 그치만 상관없잖아, 너도 날 모르는 걸. :: 『퍼레이드』 (0) | 2008/05/12 |
| 어떤 새벽의 뒤에도 아침은 온다 :: 『어둠의 저편』 (0) | 2008/04/05 |
| 아얏. 잘 꼬집긴 했는데, 어딜 꼬집은거니? ::『흑소소설』 (0) | 2008/04/03 |
| 누구나 길을 잃어버리게 되는 나이 - 『루트 225』 (3) | 2008/02/20 |
| 질투에 몸부림치는 대물렌즈 - 『질투』 (0) | 2008/01/04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