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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 225 / 후지노 지야 지음 / 박현주 옮김


새는 알을 깨고 나오고 그것은 그대로 하나의 세상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아무도 살지 않는 어느 작은 섬에서 한 그루의 야자수가 쓰러졌을 때 그 소리를 들은 이가 없으므로 소리가 나지 않은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이 이치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로 단 하나일까?

세상을 통째로 바꾸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은 '나'를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나'를 바꾸는 데 골몰하는 사춘기 - 물론 그 때는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지만 - 의 초입이 바로 "루트196"(14) 나 "루트225"(15) 즈음이겠지. 그 나이때는 누구나 한번 쯤 헨델과 그레텔,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되니까.

남을 깔보고 무시하는 성격의 에리코와 의존적이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동생 다이고가 새로운 세상을 접하며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 자체는 진부한 노선이지만 소재와 상황의 참신함과 신비로움이 그 단점을 덮어준다. 작가의 동화적 상상력은 발군.

원래의 세계와의 유일한 연락수단인 전화카드의 메타포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점점 잔액이 줄어들며 결국은 사용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전화카드는 시간은 물론 성장의 방향성을 빗대는데 더 없이 만족스러운 소품이다.

작가가 A -> B -> A' 의 도식과 "구조"라는 그럴싸한 단어와, 미아의 메타포를 이용해 넌지시 일러주는 이야기를 루트225에서 방황하던 시절의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 더 자신있게 나를, 그리고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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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 박이문 옮김

이미지 출처 : Libro


한 줄의 필름이 있다. 그 어떠한 대명사로도 표현되지 않아 마치 작품 속에 없는 인물인것처럼 느껴지는 서술자가 아내 'A'와 내연남으로 의심되는 '프랭크'를 관찰한 내용이 담긴 필름이다. 아내가 푸른색 편지를 읽는 장면, 집에 방문한 프랭크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 식사중에 나타난 지네를 프랭크가 죽이는 장면, 식사 후 테라스 앉아 지평선을 바라보는 프랭크와 A가 있는 장면, A와 프랭크가 시내에 장을 보러 가는 장면, 그리고 하루가 지나서야 돌아온 아내와 프랭크의 귀환 장면, 평소에 말수 적던 아내가 돌아와서는 왠지 모르게 활달하게 말을 붙이는 장면까지. 이 소설에서 표현하는 모든 장면이 담긴 한 줄의 필름이 있다. 그 필름은 그대로 하나의 대물렌즈가 되어버린 서술자의 시점에서 관찰한 풍경을 담고 있다.

로브그리예가 이 작품을 써내려간 방법은 이렇다. 필름을 염산이 든 욕조에 담근다. 필름은 마치 생명이 있는 뱀처럼 고통에 몸부림 친다. 앗, 아내와 프랭크가 집을 나서는 장면이 담긴 부분이 욕조 밖으로 요동쳐 나왔다. 그 장면에 대해 쓴다. 이번에는 식사장면이 욕조 밖으로 머리를 쳐들었다. 그럼 뒤이어 그 장면에 대해 쓴다. 시장을 다녀온 아내가 말을 붙이는 장면이 수면 위로 튀어오른다. 또 그 장면에 대해 쓴다. 아내와 프랭크가 시장으로 가는 장면이 발버둥치다 다시 수면 위로 목을 내민다. 그럼 그 장면을 한 번 더 쓴다. 수 많은 현재를 제시하지만, 그 어느 현재도 다른 현재의 과거가 아니고 미래도 아니다. 이어져 있는 듯, 단절되어 있는 현재들이 병치되고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독자는 읽었던 장면을 몇번이나 반복적으로 읽게 된다.

그렇다면 똑같은 서술이 중복된다는 이야기인가? 그것은 아니다. 필름을 담근 염산은 "질투"라는 이름의 맹독이다. 필름은 그 속에서 조금씩 녹아 변형된다. 아내와 프랭크가 테라스에 앉아 지평선을 보는 장면은 처음 서술되었을 때는 그저 둘이 먼 곳을 바라볼 뿐인 장면이지만, 한참 후에 다시 그 장면이 등장할때 아내와 프랭크의 손가락에는 같은 금반지가 끼어져 있다. 잠시 후 다시 서술되는 그 장면에서 아내와 프랭크는 손을 잡은듯도 하다. 서술자의 질투가 필름속의 씬들을 점차 일그러뜨리는 것이다.

벌어진 사건만을 요약한다면, 『질투』는 그 어느 소설보다도 짤막하게 요약될 수 있다. 하지만 장면의 중복서술과 교차서술, 변형서술이 서로 얽혀들면서 질투와 집착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눈으로 바라본 아내와 한 남자의 관계가 징그러울 정도로 치밀하게 묘사되는 것이다.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테라스의 기둥은 물론 기둥 그림자가 바닥과 이루는 각도에서부터 그 길이까지 세세하게 묘사하는가 하면, 사건의 전개와는 전혀 무관한 바깥풍경을 묘사하는데 책의 절반 이상을 할애하고 있다. 더구나 서술자는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모든 서술을 객관적으로 일관한다. 읽는 내내 너무나 세밀하여 불편스러운 공간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와 프랭크의 확인되지 않은 불륜에 대한 의심을 이야기하는 것이 주제라면, 주제와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한낱 풍경 따위를 모든 문학작품에 등장한 묘사를 통틀어 가장 치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철저하게 서술한 것은 로브그리예의 실수이거나 표현력의 과시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아내의 불륜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장면까지도 광적으로 디테일하게 묘사함으로써, 질투에 사로잡혀 아내를 관찰하는 남편의 내면을 직접적인 언급없이도 생생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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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이야기 / 잭 트레시더 지음 / 김병화 옮김


거친 의미로 보면, 모든 기호는 상징으로 존재한다. 동굴에 기거하던 어느 유인원이 날카로운 돌을 들어 최초로 벽에 무엇인가를 그린 순간, 상징은 인류 역사의 품에 안겨들었다. 언어, 예술, 종교, 과학,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모든 지적 행위 속에 고스란히 상징은 녹아있다.

『상징 이야기』는 상징의 백과사전이다. 인간의 지성을 번영케 해 왔던 수많은 상징들이 카테고리별로 나뉘어 잘 설명되어 있다. 충분히 '존재'가치가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의 '독서'가치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다. 영어사전이 학습의 보조도구이기는 하지만 독서의 대상이 되기는 힘들듯이. 또한 아쉬운 것은, 이 책이 집어든 상징들이 일부 대표적인 문화권에서만 추출되었다는 점이다. 작가는 아시아 문화를 중국과 일본, 그리고 나머지 군소문화로 구분짓는 시대착오적인 기준으로 이 책을 지었다고 우겨보고 싶다. 세계 각국이 지닌 우수한 상징들에 대한 더욱 폭넓은 연구를 통해, 다음 판에는 좀 더 많은 국가들이 지닌 한층 다양한 상징들을 소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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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대디, 플라이 /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 양억관 옮김


그냥 힘껏 살았을 뿐인데, 문득 거울을 보면 365일 되풀이 되는 하루하루에 마모되어가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이 있다. 사실 돌아보면 한창 빛을 발하던 젊은 시절에도 거진 '반짝'이었지 '번쩍번쩍'은 아니었던 것도 같고, 에잇 이제는 그저 내 아내, 내 딸과 함께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지. 배는 나오고 엉덩이는 퍼지고 이마는 계속 넓어져도, 더 이상 승진을 할 수 없더라도, 내 두 팔로 감싸지는 1미터 안의 세계만 지킬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뭐가 있을까?

10 미터를 원하면 10미터를 침범하고, 1미터를 지키려 하면 1미터를 위협하고, 한 뼘이라도 가지고자 아등바등하면 한 뼘조차 탐을 내는 부조리의 삼투압, 행복은 그 크기와 상관없이 깨지기 쉽지만 작은 행복이 유린당할수록 더욱 비통한 것이 현실. 내 가족, 사랑하는 내 딸, 그 최후의 행복조차 누군가에게 압수당한다면, 이제는 힘 없고, 색깔 없고, 의미조차 점점 잃어가는 그저 사회의 한 부속품으로서, 초라한 아버지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얼마나 될까?

가네시로 카즈키의 글이 발산하는 터질듯한 유쾌함은 언제나 살아있다. 글 자체도 즐겁고 캐릭터도 코믹하며 마이너리티가 메이저리티를 전복시키는 방법도 통쾌하다. 후줄근하기만 한 중년의 가장이 한 마리의 솔개로 거듭나는 과정이 궁금하다면, Fly, Daddy, 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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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대 남자 / 장폴 뒤부아 지음 / 김민정 옮김


누구나 거친 파도 속에 양발을 담그고 산다. 강한 남자는 없다. 남자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에, 나를 떠난 아내가 선택한 남자에게 적대감을 느끼고, 상대에 따라 섹스 중에 필요 이상의 야수가 되기도 하고 주눅이 들기도 한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하루를 불평으로 낭비하기도 하고, 자신이 타인보다 태생적으로 모자란다는 점을 사실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과장스러운 방법으로 그것을 부정하기도 한다. 비단 남자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남자 대 남자』는 막강한 비유로 짜여진 수작이다. 폴 아셀방크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눈보라 속을 헤치며 어딘가에 서서 눈에 묻혀있을 자신의 차를 향해 약을 가지러 가는 도정은 그대로 인생의 은유다. 결국은 뜻대로 약을 찾지 못하고 몸에 묶여 있는 줄을 되감으며 오두막으로 돌아 왔을 때, 줄은 계단 난간에 감겨 있었고 그 줄을 굳건히 붇잡고 있어주리라 믿었던 이는 오두막 안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는, 그 상황이야말로 감히 삶이라 하겠다.


안나는, 어디에 있을까? 폴에게, 패터슨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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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미스 프랭 / 파울로 코엘료 지음 / 이상해 옮김

대개는 이런 식이다. 한 사람이 있고, 양심과 이득을 저울질해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 갑자기 그의 머리 좌측에서 그와 똑같은 얼굴의 쪼그만 악마가 뿅! 하고 나타나서 그에게 말한다. "눈 딱 감고 그냥 저질러 버려. 아무도 몰라, 설사 안다고 해도 누구도 너를 비난하지 못할 걸? 다들 이런 상황에서는 똑같이 할 테니까." 주인공이 그 미니사이즈 악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우측에서 뿅하고 하얀 옷을 입은 미니사이즈 천사가 등장한다. 그 천사도 주인공의 얼굴을 하고서는 "안돼, 이건 옳지 않은 일이야. 지금 당장은 좋을 지 몰라도, 분명 나중에 두고두고 오늘의 잘못을 후회할 거야." 라면서 틀어말리기가 일쑤다. 여기까지가『악마와 미스 프랭』에 쓰여진 내용 전부이다. 다만 이런 방식의 선택의 기로에서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양상을 조금 더 길고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있을 뿐.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 작품은 조금도 유치하거나 식상하지가 않다.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이 항상 품고 있는 "환상성"은, 그리고 그 환상성으로 인해 피어나는 "모호함"은 언제나 그랬듯, 역시 파울로 코엘료야, 하는 감탄을 이끌어 낸다. 마치 『어린 왕자』처럼 읽는 이에게 다양한 생각의 가지를 제공하여 읽을 때마다 조금씩 다른 것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파울로 코엘료의 재주다.

그의 작품이 항상 기분 좋은 또 다른 이유는 동화처럼 주제가 명확하다는 점이다. 표지판이 잘 깔려 있는 도시의 거리를 거니는 것처럼, 또한 언제나 해피엔딩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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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 / 미야베 미유키 지음 / 김현주 옮김


근래 우연찮게 추리 소설을 본으로 하는 작가들의 비 추리 소설을 접할 기회가 생기는 것 같다.

사실, 나에게도 소설로 써 보고 싶던 게임들이 있다. 드래곤 퀘스트가 그랬고, 창세기전이 그랬다. 하지만 시작과 거의 동시에 내 필력의 하찮음이 드러나고, 게임 제작자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도 할 말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솔찬히 원작을 모욕하게 되더라. 아, 컨버전의 어려움이란.

나는 PS2 타이틀인 '이코'를 해 본적은 없지만, 포털 사이트를 통해 검색만 해 봐도 심상치 않은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코를 칭찬하는 리뷰는 널렸고, 곳곳에 이코를 자신의 생에 최고의 게임이라는 포스트를 올린 블로거들이 퍼져 있었다.  

요지는,

왜 책에 대한 감상을 쓰면서 컨버전의 어려움과, 원작 게임의 탁월함만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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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밑 악어 / 마리아순 란다 지음 / 유혜경 옮김


특정한 책을 노리지 않고 목적없이 서가를 유유히 기웃거리는 것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놈이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그냥 쑥 뽑아드는 것이다. 도서관 서가에 꽂힐 만한 책이라면 어느 정도는 되겠지, 하는 뿌리 없는 안심에도 불구하고 항상 좋은 책이 걸리는 것은 아닌데, 이번에는 대박이 났다.

구두를 먹는 악어라니! 타인에게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만의 악어를 지니는 병. 고립된 상황과 인간 관계의 절박함,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란다는 '악어병'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질병으로 명명한다. 크로커다일약, 크로커다을 좌약, 크로커다일 소다수를 아무리 먹어도 침대 밑의 악어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가 찾아와 마음의 문을 두드리지 전까지는.

『침대 밑 악어』는 통째로 하나의 유쾌한 알레고리다. 품고 있는 의미는 카프카의 『변신』과 유사한데, 카프카가 인간간의 단절과 소통의 부재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그로테스크함으로 무장하였다면 란다는 그런 정공법보다는 우스꽝스러움을 통해 에두르고 있다.  

『침대 밑 악어』는 작은 책이다. 일반 문고형식으로 찍어내면 채 100페이지가 되지 않을만큼 짧다. 그 속에 1000페이지에도 남기기 힘든 이야기를 눌러담은 마리아순 란다의 통찰과 재치가 욕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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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소설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이선희 옮김


이 책을 읽고 단 한 번이라도 쓴 웃음을 흘렸다면, 인간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동물인지 안다는 뜻이다.

본래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을, 그것도 주로 "슬픈 반전"을 무기로 삼는 추리소설을 쓴다고 한다. 그런 그가 딱 세 편의 블랙 유머 단편집을 내놓고는 더는 단편을 쓰지 않겠다며 혀를 내둘렀다고 하는데, 비록 웃음 3부작 중, 가장 떨어진다는『독소소설』이긴 하지만, 이 작품 하나만 놓고 보았을 때, 히가시노 게이고는 원래 헤엄치던 풀장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쓴웃음을 지을만한 인간의 단면들을 포착한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의 양태를 문학적으로 에둘러 표현하기보다, 직접적으로 제시하여 다수의 대중이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써낸 그 가벼움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한 가지를 더 짚자면, 이 책은 "독"소소설이라기에는 독성이 그다지 치명적이지 못하고, 독"소"소설이라기에도 너무 심심하다. "큭큭큭큭, 허걱!, 낄낄낄낄," 등으로 시작하는 역자 후기는 지나친 과장이다. 겨우겨우 '피식'을 유발할 뿐. 가네시로 카즈키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 정도로는 약발도 안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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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사람 / 커트 보네거트 지음 / 김한영 옮김


커트 보네거트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훨씬 더 진보해 있었을 것이다.

블랙 유머의 거장. 이 시대 최고의 풍자꾼이라 불리는 커트 보네거트가 미국과 기계문명에 대한 익살맞은 공격을 통해, 점점 자취를 감춰가는 휴머니즘의 불꽃을 태우기 위해 여든 둘이라는 고령에 써낸 이 산문집은 마치 커트 보네거트의 사상을 핵심요약한 노트라 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여든 넷의 온 생을 통해 일구어진 반짝이는 해학과 깊이 있는 농담, 날카로운 촌철살인이 더 이상 세상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점에서 보면 그가 타계한 2007년은 역사에 손꼽을만한 비극적 한해가 되어야 할 지도. 아, 이제 누가 커트 보네거트의 빈자리를 메울 것인가.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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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플로리앙 푸유 지음 / 용경식 옮김

아름다운 것은 부서지기 쉽고 부서지기 쉬운 것이 아름다운 것을 보면, 혹시 연약함은 아름다움의 잔가지가 아닐까요? 지금 돌아보면 별 것도 아니었던 사건들에 의해 우리의 사춘기는 격랑 위의 돛단배처럼 변화와 위태로움 속에서 흔들렸지만, 어느덧 자신의 색깔이라는 닻을 내려버려 덧칠도 쉽지 않은 오늘에 와서야 그 부서지기 쉬운 시절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장 소설을 읽나 봅니다.

과연 부서지기 쉬운 세계의 주인인 '그들'이 누구인가를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습니다. 열 다섯, 사춘기에 막 들어선 주인공 '리자'와 또래 친구들이 '그들'일까요? 혹시, 리자의 눈에 비치는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세상 속에서 떠밀리듯이 살아가는 어른들이 '그들'은 아닐까요?

실비 플로리앙 푸유라는 작가를 저는 처음 접했습니다. 프랑스 사람인 듯한데, 본국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일단 한국에서는 그리 유명세를 타지 않은 작가인가 봅니다. 저는 아직도 이 작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모릅니다. 이름을 보고 여성이라고 추측할 뿐이지요. 저는 아무래도 사강쪽이 훨씬 마음에 드는데, 개인취향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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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 무라카미 류 / 한성례 역



인도에 있나요, 류.
30년이 지났네요. 당신의 플룻은 아직 소리가 나는가요.
그 미친듯이 비오던 날 우리가 헤매이던 밭은, 학교는, 활주로는 그대로인가요. 그 흉측한 전조등은 아직도 죄없는 어둠을 발가벗기고 있나요. 당신에게 목졸려 죽고 싶었던 그날, 살갗을 찔러대던 그 역한 도시의 심장은 아직도 세상에 회색 피를 돌리고 있나요. 당신이 보았던 그 검은 새는.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요. 그 시절 갈 곳을 몰라 하염없이 해메이던 우리는 사실 어디로 가고 싶었던걸까요? 헬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약들과 악취 나는 섹스파티를 통해 우리가 좇던 윤곽이 희미한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새, 우리를 훔치던 그 검은 새의 악마같은 혀를 우리는 진정 끊어내고 싶었던 걸까요?
지금에 와서, 그때 검은 새를 보았다던 류의 말은 거짓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해요. 우리는 그 시점에 이미 검은 새의 부리 속에서 표류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길고 좁은 그 목구멍을 통해 한없이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는지도. 류, 어떻게 생각해요? 지금 류는 어디에 있나요. 혹시 이미 검은 새의 뱃속에서 소화가 되어 버렸나요? 아니면, 결국 모든 영양소를 착취당해 어느 차가운 길바닥에서 구역질 나는 배설물로 굳어 있지는 않나요? 설마, 그 비좁고 어지러운 길을 거슬러 나와 끝내 그 검은 새를 죽여버리고 어느 어둡고 조용한 바에서 한잔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어요. 류의 플룻, 그 음률 속에서 나는 인도를 보았어요. 인도가 아닌 다른 인도. 한 없이 투명에 가까운 그 푸른색의.
 


P.S. 류, 당신의 말이 맞아요. 우리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오늘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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