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학하던 날, 날씨가 어땠더라?
통계의 힘을 빌려보자. 당사자들이 끝없는 사랑을 원하든 원치 않든 어쨋든 겪는 것이 실연이고, 그 결과 전지구적으로 사랑의 수효는 산술급수, 실연의 수효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사실이다. 현실이 이러하니 만약 실연을 겪어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대개의 남녀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악물고 실연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영원할 것만 같은 현재의 사랑에 안심하여 정신줄 놓고 있으면 결국 호되게 당한다. 어쨌든 개학은 오고, 들로 산으로 신나게 뛰어다녔던 게으름뱅이들은 밀린 일기를 몰아서 써내야 한다.
2. 몇 번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빈 집>을 한 번 더 읽은 후
요절한 천재들 중 일부는, 요절했기 때문에 더욱 빛나는 경우가 있다. 반짝거리는 작품을 남겨놓고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순간, 그런 천재가 있었드랬다- 하는 전설의 한 페이지가 되어 역사에 남는 것이다. 하지만 기형도의 경우는 절대 다르다. 그가 죽지 않았더라면, 시인을 꿈꾸는 젊은 문학도들은 누구나 지금보다 두 배는 행복했을 것이며 동시에 두 배는 더 좌절했을 것이다.
3. 무례한 수아씨
한 때 미쳐서 연속적으로 배수아를 읽었던 적이 있다. 한 달을 현란한 비문속에서 헤롱대다가 내린 결론이 '이 여자, 나한테 뭔가를 이해시킬 생각이 눈꼽만치도 없어.' 였고, <훌>을 딱 절반만 읽은 채 후일을 기약하며 배수아를 봉인했다. 하지만 소설집 <그 사람의 첫사랑>은 그나마 읽기도 쉬웠고 내용도 좋았다! 마지막 문단은 마치 읽는 사람을 농락하는 것 같다. 사랑은 버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식어갔지만 그는 결정적인 것을 상실하지는 않았고, 그는 결정적인 것을 상실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불행했고, 그는 불행했지만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것을 모른다는 뭔가 불편한 연쇄서술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여보면 실연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는 명문이다.
여담, 교수님이 말씀하신 프랑크프루트 도서전에서의 배수아의 눈부신 활약(?)은 과연 저것이야 말로 배수아!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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