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사랑'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08/05/21 [후기] 12주차 by Syo
  2. 2008/05/07 [후기] 10주차 by Syo (1)
  3. 2008/04/30 [후기] 9주차 by S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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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8/04/03 [후기] 5주차 by Syo (1)
  6. 2008/03/27 [후기] 4주차 by Syo
  7. 2008/03/18 [후기] 3주차 by Syo
  8. 2008/03/11 [후기] 2주차 by Syo


1. 방학하던 날, 날씨가 어땠더라?

통계의 힘을 빌려보자. 당사자들이 끝없는 사랑을 원하든 원치 않든 어쨋든 겪는 것이 실연이고, 그 결과 전지구적으로 사랑의 수효는 산술급수, 실연의 수효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사실이다. 현실이 이러하니 만약 실연을 겪어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대개의 남녀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악물고 실연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영원할 것만 같은 현재의 사랑에 안심하여 정신줄 놓고 있으면 결국 호되게 당한다. 어쨌든 개학은 오고, 들로 산으로 신나게 뛰어다녔던 게으름뱅이들은 밀린 일기를 몰아서 써내야 한다.




2. 몇 번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빈 집>을 한 번 더 읽은 후

요절한 천재들 중 일부는, 요절했기 때문에 더욱 빛나는 경우가 있다. 반짝거리는 작품을 남겨놓고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순간, 그런 천재가 있었드랬다- 하는 전설의 한 페이지가 되어 역사에 남는 것이다. 하지만 기형도의 경우는 절대 다르다. 그가 죽지 않았더라면, 시인을 꿈꾸는 젊은 문학도들은 누구나 지금보다 두 배는 행복했을 것이며 동시에 두 배는 더 좌절했을 것이다.



3. 무례한 수아씨

한 때 미쳐서 연속적으로 배수아를 읽었던 적이 있다. 한 달을 현란한 비문속에서 헤롱대다가 내린 결론이 '이 여자, 나한테 뭔가를 이해시킬 생각이 눈꼽만치도 없어.' 였고, <훌>을 딱 절반만 읽은 채 후일을 기약하며 배수아를 봉인했다. 하지만 소설집 <그 사람의 첫사랑>은 그나마 읽기도 쉬웠고 내용도 좋았다! 마지막 문단은 마치 읽는 사람을 농락하는 것 같다. 사랑은 버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식어갔지만 그는 결정적인 것을 상실하지는 않았고, 그는 결정적인 것을 상실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불행했고, 그는 불행했지만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것을 모른다는 뭔가 불편한 연쇄서술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여보면 실연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는 명문이다.
여담, 교수님이 말씀하신 프랑크프루트 도서전에서의 배수아의 눈부신 활약(?)은 과연 저것이야 말로 배수아!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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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yo

1. 사랑은 무죄

애완동물에서 시작하여 기계나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 즉 비인간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하는 일종의 장애현상으로 정의하는 견해는 역사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다지 합리적이지가 못하다. 사랑을 인간끼리의 상호작용으로 보는 시야는 지극히 좁다. 역사적으로 사랑의 한계를 자기네들의 구미에 맞게 조정하려했던 다수 혹은 기득권자들의 음모는,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자 한 약자들의 작고 조용하지만 동시에 뜨겁고 치열한 혁명 앞에 항상 실패로 끝나곤 했다. 신분이 다르면, 인종이 다르면 사랑하지 못했다. 그 벽을 허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맨몸으로 세상에 부딪혀 깨어져야 했을까? 심지어는 성별이 다르면 사랑하지 못하게 하던 그 굳은 말뚝이 지금 소수자들의 저항에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테크노 에로티시즘이 왜?
사랑의 지평은 규범과의 충돌 속에서 조금씩 마모되기는 하지만 결국은 무한히 확장되는 쪽이 정상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눈동자가 얼굴의 절반만하고 가슴이 얼굴보다 큰 애니메이션 속의 여자 캐릭터를 사랑하여 모니터에 대고 말을 건다고 해도, 그것은 그의 인식력이나 연애에 장애가 있을 뿐이지, 사랑에는 아픈데가 없다. 사랑은 죄가 없다.



2. 김영하는 멱살잡이 유발자

국어국문학과를 다니는 친구 녀석은 김영하를 닮고 싶었다. 그의 신작이 나올때마다 관심도 없는 나를 붙잡고 추천을 빙자하여 찬송가에 가까울 정도의 '김영하론'을 펼쳤다. '김영하 만세' 대자보라도 만들 기세였다. 그때 한참 김연수를 읽고 있던 나는 '김연수도 장난아님'을 주장했는데, 못난 놈이 그것을 선전포고로 받아들였다. 녀석은 이내 신성모독한 죄인을 앞에 둔 이단심문관이 되어 비전공자인 나는 받아쓰기도 못할 문학 용어들을 장전, 난사하기 시작했다. 일면식은 커녕, 죽기전에 채팅 창 한번 맞대 볼 확률도 희박한 어느 소설가를 단지 다른 소설가와 동일선상에 놓았다는 이유만으로 난데없는 전문 용어에 욱씬하게 두들겨 맞은 내가, 분란의 원흉 김영하에 대하여 기꺼운 감정을 품고 있을리가 없다. 그런 이유에서 김영하를 읽을 때는 항상 미간에 힘을 주고 뭐 하나 걸리기만 해봐라하는 마음으로 덤벼들지만 항상 참패. 하긴 뭐 내 주제에. 읽을 때마다 역시 김영하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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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yo
내 생각에,

"사랑"은 단일감정이 아니라 복합감정이다. 호감, 존경심, 질투심, 소유욕, 성욕, 파괴욕..... 이루 헤일 수도 없이 수많은 감정들이 한데 엉켜있는 사랑은 걸쭉한 물약같은 것이다. 게다가 짜증나게도 사랑은 비선형이라 계산도 힘들다! 그러다보니 천 명의 사람이 있으면 천 개의 -혹은 천개가 넘는- 사랑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사랑을 구성하는 레시피는 너무도 독특해 자신의 연인과도 같지 않음은 물론, 자신조차도 똑같은 조합을 두 번 만들어낼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늘과 땅 사이에는 '사이'가 있다"는 시덥잖은 농담처럼, 나의 사랑과 너의 사랑 사이에도 반드시 '사이'가 있다. "우리의 사랑" 같은 건 유치한 거짓말 혹은 앙증맞은 가식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몫의 사랑을 한다. 철저히. 그러니 어떻게 사랑이 엇갈리지 않을 수 있을까! 두 개의 사랑을 가로지르는 그 간극은 불가피력이다. 마치 중력처럼.



역시 내 생각에,

"사이"가 중력이라면 "섹스"는 자이로드롭이다. 자유낙하가 선사하는 짜릿한 무중력의 맛. 인간이 중력에서 벗어나고자 날개를 염원하듯이, 연인들은 간극을 떨치기 위해 섹스를 찾는다. 확실히 줄어드는 것은 육체적인 간격만이 아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두 연인이 흡사한 감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데 섹스만한 순간이 있을까? 





이제껏 몰랐는데, 쓰고 나서 읽어보니 내게서 섹스 예찬론자의 냄새가 풍긴다. 엄밀하게 보면 "섹스"자체가 주제는 아니었는데. 죽음과 섹스의 친화성은 내겐 너무 어렵고, 들어도 잘 모르겠고, 아무려면 어떠랴 하는 생각마저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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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yo


1. 이게 다 고독 때문이다

생각은 철저히 고립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순간 인간은 즉시 고독해진다. 두 명이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있다고 하지만 하나의 생각을 두 명이서 나눠 진행할 수는 없기 때문에. 존재에 걸쳐있는 그 필연적인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 인간이 선택한 다소 투박하고 부족한 대용품이 대화다. 소통의 과정에는 반드시 왜곡이 따르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인간은 효과적으로 고독을 해결하지 못한다. 그럼 대안은? 많은 사람들이 고독을 막아내는 방패로 사랑을 지목한다. 공감한다. 비록 고독의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사랑이 그나마 가장 효율적인 항고독제라고 생각한다. 고독의 이로움과 해로움을 떠나서, 혼자 고독을 감당할 수 없다면 내 처방전은 사랑이다.



2. 사랑이 변하는 이유

사실 고독의 유일한 해결책은 완벽한 소통이다. 한 점의 왜곡도 없이 나의 생각이 순도 100%로 상대에게 흘러가고 그 대가로 100% 순도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사랑 따위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안으로서의 사랑은 완벽한 소통을 흉내내려 한다. 그것이 당연히 불가능하다는 데에 사랑이 변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아니, 사랑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변한다. 믿었던 사랑이 나를 완벽하게 고립에서 끄집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랑에 실망하고 조금씩 사랑을 파국의 방향으로 옮겨놓는 것이다. 유통 기한의 차이일 뿐, 결국 쓸모를 다한, 아니 쓸모를 다하지 못한 사랑은 내버려지고 사랑의 사전에는 "유한성"이라는 불편한 용어가 자리잡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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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yo

1. 커밍 아웃?

리포트에 여념이 없는 룸메이트를 붙들고 게시판에 올라온 성 정체성 테스트라는 것을 같이 해 보았다. "Gay일 확률이 높은 X-Type"에 조금 못미치는 "Bisexual(양성애자)일 확률이 높은 Z-Type(L)" 타입으로 밝혀졌다. 결과를 보고 룸메이트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룸메이트가 말했다. 넌 역시 대단한 ㅅㄲ야. 내가 대답했다.  그정도야ㅋㅋ. 서로 마주보고 한번 씨익 웃은 다음 룸메이트는 다시 리포트에 매달렸고, 나는 내 할일을 찾아나섰다.
전에 인터넷을 해메다 발견한 성격테스트를 해본 적이 있다. 그때 우리 둘은 서로의 테스트 결과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건 정말 네 이야기라는 둥, 요건 살짝 이상하다는 둥. 살짝 들떠있었지만 의욕적인 상태로 서로의 결과에 대해 반진지하게 토론을 했더랬다. 그런데 왜 성 정체성 테스트 결과에 대해서는 그냥 한번 씩 웃고 농담이나 주고 받은 다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 앉았던 걸까? 왜 나는 넌 역시 대단한 놈이야. 라는 룸메이트의 장난섞인 말에 실제로 내가 이성애-양성애-동성애 세 가지 모두를 가능한 사랑의 한 형태로, 전혀 차별하지 않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피력하지 못했던 걸까? 나로 하여금 그런 자백(?)을 쉽게 하지 못하게 만든 것은 누구일까?



2. 성석제는 과연 성석제

그런 이유로 다른 다수의 이성애자들에 비해 내게는, 동성애나 양성애가 사회에 미치는 전복적인 영향력이라는 놈이 얼마나 첨예한 문제인지가 그리 쉽게 와닿지 않는 편이다. 같은 이유로 나는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가 동성애자와 사회적 관념간의 마찰을 주제로 삼는 것보다, 그저 수많은 종류의 사랑 중에 한 가지로서의 동성애 그 자체를 다루는 쪽을 선호한다.
그래서, 성석제님의 '첫사랑'은 과연 교수님의 말씀처럼 첫사랑을 다룬 작품들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멋진 작품이었다. 내가 어떻게 감히 작가의 의중을 논하겠느냐만은, 작가는 독자들이 이 글을 '동성애'에 대한 시선으로 읽기 보다는 그저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주기를 바랐을 듯 하다. '나'가 '너'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던 것은 절대 그들이 동성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나'와 '너'가 동성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고난 따위는 아무데도 없다.
그래서 감히 이렇게 생각해봤다. 이 챕터의 주제가 '불온한 동력'으로서의 사랑이고 '세계를 전복하는 힘'으로서의 사랑이라면, 그런 시각으로 동성애를 바라보는 것이 이 챕터의 의도라면, 단지 이 소설 속의 '나'와 '너'가 둘다 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첫사랑'을 "소년, 소년을 만나다" 라는 소제목 아래에 위치시키는 것은 좀 어색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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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yo


1. 사랑과 금기에 관한 질문1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날것으로의 사랑이 애초에는 존재했다면 그 사랑의 주위에 금기의 장벽을 둘러친 이는 누구일까? 주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사랑은 왜 조화보다는 혁명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이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세상에 맞서 주먹을 쥐는 사랑이 올바른 것일까 아니면 손바닥을 내미는 사랑이 바람직한 것일까?



2. 사랑과 금기에 관한 질문2

어쨌든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수많은 금제에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전진한다. 선배들이 몸통박치기로 부셔놓은 암초를 지나 후배들은 더 큰 암초와 대결하면서 부서지고 부서뜨린다. 사랑은 하나하나 금기의 매듭을 풀어나가는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그렇게 모든 금기들을 클리어하고 나면 과연 지고한 사랑의 알맹이가 기다리고 있는 걸까? 사랑을 항해라고 생각하자. 대양을 향해 나아가며 점점 높아지는 파도에 맞서 결국 수평선을 넘으면, 황금이 넘치는 신대륙이 아닌 끝없는 낭떠러지가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3. 금기에 도전하는 이유

그 모든 고통과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금기에 맞부딪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의무이며 또한 즐거움이기도 하다. 같은 이유에서 금기와의 싸움에서 만신창이가 된 사랑의 이야기는 연애 당사자들간의 단순한 -혹은 복잡한- 불화에서 비롯된 이별의 이야기보다 더 쓸쓸하게 느껴진다. 결국 당골네를 향한 '나'의 사랑과, '나'를 향한 귀연의 사랑과, 귀연을 향한 승규의 사랑이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부서져버렸을 때 "당골네의 집이 무너져내렸고, 철탑이 번쩍번쩍 불꽃을 토하며 무너져내렸고, 민둥산이 무너져내렸고, 하늘과 땅이 뒤엉켜 쏟아져내렸고, 우리의 우주가 한꺼번에 붕괴하였고" 라는 다소 과장된 표현이 조금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비록 실패로 끝난 사랑이지만 그 사랑을 지키고자 누구도 대적할 생각을 못한 강력한 금기와 맨손으로 맞서 싸웠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도전과 응전으로 전개되는 것은 역사만이 아닌듯 하다. 아니, 어쩌면 사랑도 하나의 역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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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yo

1. 세계를 전복하는 불온한 동력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하나의 세상이다. 태어나기 위해선 하나의 세상을 파괴해야 한다"고 헤르만 헤세는 공표했고, 그 금언은 뮤즈가 되어 이후 수많은 예술가들의 품에 안겼다. 나를 바꾸는 것이 곧 하나의 세계를 바꾸는 것이라면, 그 결말을 차치하고서라도 사랑만큼이나 효과적으로 세계를 바꾸는 매커니즘이 있을까? '세계를 전복하는 불온한 동력'이라는 문장의 절묘함에 반해 본다.


2. 그리고 다시 '

그래서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는구나, 또다시 그로테스크와 자위와 가면을 거쳐가더라도, 그래서 다시 다른 사람을 기다리고 만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것이 어떤 방향이든 인간은 변하고 변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은 변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위치 에너지가 운동 에너지로 바뀌면서 동력이 생겨나듯이, 사랑 또한 변화를 통해 사람에게 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더 이상 변하는 사랑을 향해 '변질'이라는 멍에를 씌워서는 안 되거나, 굳이 변질을 지적하고 싶다면 사랑 자체가 변질을 내재하고 있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함을 인정해야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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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yo


1.

강의 계획서 '펼치기'는 이제껏 내가 받아본 것들 중 가장 잔인한 강의자료였다. '자아성'과 '기다림'에서 시작되어 '만남'과 '욕망'을 거쳐 '질투, 폭로'로 얼룩지다 결국 '종말'을 낳는 냉혹한 도식. '문학'과 '사랑' 중에 아무래도 사랑을 다루게 될 거라는 교수님의 말씀. 한 학기를 배워야 할 사랑이 너무 현실적이라서, '현실'적이라는 단어와 '종말'이라는 결론이 형성하는 미묘한 교집합 때문에, 수업중에 교수님께서 딱 한 번만 "모든 사랑이 다 종말로 가는 건 아니랍니다." 라고 말씀해주셨으면 했는데. 거장들의 그림이 그러한 사랑의 "현실성"에 대한 너무 뚜렷한 증거라서, 어딘지 모르게 일그러진듯한 그림을 보며 씁쓸하면서도 내가 모르는 사랑의 새로운 이면을 발견할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에 어른이 되는 길목에 선 기분도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끈임없이 위기와 조우하고, 어떠한 방향으로든 사랑이 변해야 한다면, 나는 이 수업에서 사랑이 변하는 이유보다 사랑이 변하는 순간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다. 흰색과 검은색의 그라데이션을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손을 짚어가며 쫓아가듯이 치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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