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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Chronicler 2008/08/27 00:53


1. 風속성 2

방랑자의 반댓말이 정착민이라고 손쉽게 대답하는 사람은 가슴에 바람風을 품을 자격이 없다. 그런 이들의 머릿속에는 고정된 안락에 대한 미련이 아직도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다. 방랑의 대척점에 서 있는 단어는 바로 순례다. 우리 바람을 사랑하는 이들은, 매일 신발끈을 고쳐 묶으며, 움직이지 않는 것은 절대로 상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적지의 유무만이 차이가 될 수 있다. 방랑과 순례를 적절하게 교차반복시키는 바람이 되리라. 때로는 풍요롭게, 때로는 주밀하게.




2. 서울역에서 중랑천까지

그 전화를 끊었을 때, 그러니까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고집의 끝을 살짝 스쳐지나갔을 때, 아니 더 엄밀히 말하면, 네 분노의 원인을 찾아서 모든 껍질을 하나씩 벗겨나가 결국 남은 고갱이라는 것이 내게는 단지 너의 아망일 뿐이라고 느껴졌던 그 직후에, 나는 바로 나의 잘못을 깨달았다. 남자들은 모두가 안다. 모든 충돌상황에서 여자는 해답이 아니라 공감을 원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다면 그런 말이 유명해졌을리조차 없겠지. 어쨌든 나는, 이러다가는 나중에라도 정말 한번은 큰일 나겠다 싶어 충고를 아니, 충고의 가면을 썩 어설프게 뒤집어 쓴 질책을 내뱉었고, 너는 마치 세상이란 혼자 나서 혼자 가야한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사람처럼 슬픈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갈 마음을 먹었다. 꽤나 빠른 결단이었다. 내 얼굴을 마주보고 너는 울었지만, 나는 이야기를 해야 했다. 당장의 네 마음을 풀어주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내일의, 혹은 모레의 네 마음이 엉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악역을 하였다. 나는 네 편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거라고 나는 말했다. 거짓말, 이라고 대답하는 너의 눈에서 말과는 달리 나를 믿어주는 빛을 느꼈기 때문에 안심했다. 그리하여 너와 함께 걸어온 두 시간 삼십 분 동안, 그 언젠가 노래방에서 I'm my fan 이라는 가사의 노래를 2절까지 이어부르던 너의, 가장 큰 팬이 되어주리라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아까 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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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r 2008/08/20 00:41


1. 인스턴트를 먹는 시간

지치지 않는 사랑을 찾아 해매던 때가 홀연히 지나고 어느덧 교차점에 섰다. 믿고 싶은 사실이 곧 진실은 아님을 인정하는 길로 들어서면 어떨까. 깨어지지 않는 진공관 속에 갇힌 두 사람이 멀리서 달려와 서로의 외벽에 충돌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입 모양만 보고 서로의 진심을 가늠하지만 실은 모든 것이 판단착오 아니면 거짓부렁이라고, 그렇게 써 있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어떨까. 그곳에는 아마 바쁜 어른의 사랑이 놓여있을 것이다. 전자레인지를 여세요. 사랑을 집어넣으세요. 자동조리 버튼을 누르세요. 3분만 기다리세요. 사랑을 꺼내세요. 마음껏 사랑을 하세요.

당장은 미워보인다지만 사람이 길을 만들고 길이 사람을 만든다 하더라.




2. 가해적 본능

또 한번 눈 앞에 펼쳐진 공간을 닫고 스스로의 내부로 침전하였다. 자라처럼 목을 움츠려 껍데기 속으로 도피하였다. 날카롭게 핏발이 선 감정들이 부딪는다. 넌 참 불쌍한 여자야, 라는 말을 무기로 그녀를 불쌍하게 만들어보았다. 맞아, 난 참 불쌍한 여자야, 라고 눈빛으로 대답하는데, 맙소사 어떻게 된 세상인지 내 주위에는 온통 불쌍한 여자만 득시글거린다는 생각에 뜨악했다. 누군들 스스로 불쌍하고 싶었을까. 어떤 사건이 그녀들을 불쌍하게 만들었는지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그 연쇄사건들의 범인이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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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r 2008/08/18 21:51


1. 아빠가 물렸다

밭에서 잡초를 뽑던 아버지가 독사에 물리셨다. 극독은 아니었기 때문에 급히 대강의 응급처치를 하고 당신의 발로 병원을 찾아갈 수 있었단다. 진료도 받고 해독제도 맞았지만 한 이틀 입원해서 경과를 두고 봐야 한다는데, 그런 말씀을 하는 목소리가 어쩐지 눅진눅진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다. 문병 올 사람 하나 없는 인생이다. 부인과는 애당초에 웬수 소리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고, 돈 문제 때문에 형제간도 이미 남보다 못하다. 자식 가슴에 아픈 상처 박아놓은 것, 스스로도 잘 아는 처지라 아들 딸 하나씩 두고도 아쉬운 소리가 영 쉽지 않다. "니는 아픈 데 업제?" 물어오는데 "나는 괜찮아요. 여기는 뭐 뱀도 없고." 라고 대답했더니 허허허 웃음 소리 사이로 묵은 내 나는 세월이 새어나온다. "조리 잘 하세요." 하고 전화를 닫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쩐지 아버지는 나보다 저 하늘에 더 가까이 닿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버지는 시간이라는 독사에 물렸던 것이 아닐까.




2. 룸메이트는 수강신청을 앞두고 지랄중이다

그럴싸한 한 편의 소설을 써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여름방학이었는데, 아무런 소득도 없이 어느덧 다 저물었다. 영어 욕심도 있었고 개강 전에 몇 과목을 미리 공부해 놓겠다는 어쭙잖은 다짐도 가졌었는데 결국 얻은 것이라고는 체중뿐이다. 가장 넘기기 힘들다는 3학년 2학기의 개강을 생각하면 마음이 실로 척연하다. 폭염이 내리꽂히는 날, 절절 끓는 아스팔트 위를 맨발로 건너가야하는 방랑자의 기분이다. 답은 있다. 발 끝으로 달리면 한다. 앞선 발의 발가락이 땅에 닿기 전에 뒤선 발이 허공을 박차야 한다. 그래도 아마 몇 개쯤의 발톱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아까워 멈칫하지 말자. 순간의 정지는 모든 것을 익사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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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r 2008/08/17 22:09


1. 부자대화

과외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5호선 둔촌동 역에서 잠깐 화장실에 들렀다. 가장 안쪽 소변기에서 야구모자와 반바지를 입은 아저씨가 소변을 보고 있었는데 대여섯살 쯤으로 보이는 그의 아들내미가 제 아버지의 왼쪽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오줌을 누고 있었는데, 꼬맹이가 입을 열었다. "아빠, 이거 뭐 파는 거야?" 꼬맹이가 가리키는 것은 콘돔 자판기였다. 이거 흥미진진해지는데? 하고 있는데 아버지 왈 "콘돔 파는 거야." 이곳이 아버지의 가장 큰 범실이었다. 꼬맹이의 두 번째 공격이 들어왔다. "콘돔이 뭐야?" 아버지가 흠칫 하는 것이 옆에서 소변보는 내게도 느껴졌다.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아버지, 역시 쉬이 반격하지 못한다. 그때 꼬맹이, 쐬기를 박는데 "아빠, 콘돔이 뭐냐니까? 딸기향은 또 뭐고~" 예상도 못한 공격에 휘청거리는 아버지 겨우 한다는 대답이 "빨리 일로와서 손 씻어. 어서." 오줌은 자기가 눠 놓고 왜 애꿎은 애가 손을 씻나. 꼬맹이 손 씻으며 공격을 이어나가는데 "아빠, 콘돔이 뭐냐니까~" 아버지의 얼굴은 한없이 붉어지고 "그런거 있어."로 겨우 리시브를 하며, 화장실을 돌아 빠져나가는데, 꼬맹이 마지막 스매싱을 날린다. "아빠! 나도 콘돔 사줘~!"



2. 담금질

나는 우리가 아직 더 강해질 여력이 남았다고 본다. 지새는 밤은 대장장이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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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r 2008/08/15 23:52


1. 風속성

그 누구에게도 온전한 나를 내주지 않을 생각이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하면 가차없는 정답을 내놓을 생각이다. 영원이라는 것을 믿기에는 너무 많은 일을 겪었고 내 마음도 꽤나 닳았다. 모든 관계가 세월에 얻어맞아 바스라지는 운명이라면, 나는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외부의 침입에 조금 더 강경하게 대처할 생각이다. 어제 잔인해 본 사람은 내일 더 쉽게 잔인할 수 있다. 어제 버려본 사람은 내일 더 편하게 버릴 수 있다. 나는 변할 생각이다. 내 변화를 막는 이들과는 싸울 생각이다. 미워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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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r 2008/08/13 20:45


1. 다녀왔습니다, 다녀오세요

당초 '주식회사 Show me the money'의 주 임무는 암암리에 대구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피가 튀고 뼈와 살이 발리는 전문적 훈련을 끝마친 세명의 대원 'B', 'H', 'J' 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고담 대구는 조금씩 평화와 안정을 찾아갔다. 하지만 대구 시민 누구도 그 평화가 그들의 손끝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세 명의 대원 또한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대원 B가 모두에게 말했다.
"이 곳의 치안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것 같군. 이제 여기는 자네들 둘에게 맡길까 하네."
그러자 대원 J가 물었다.
"그럼 자네는 어디로 갈 생각인가?"
대원 B는 엄지와 검지를 펴서 턱에 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대답했다.
"MB가 시장으로 있는 서울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고 있는 듯 하네. 아직은 큰 사단은 나지 않고 있는 듯 하지만 어떻게 될 지는 모를 일이지. 서울이 제 2의 고담대구가 될 수도 있네. 아니 MB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이 나라 전체가 고담화 될 수도 있다네."
그러자 대원 H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자네의 말에 일리가 있네. 이곳 대구는 우리에게 맡기고 어서 서울로 올라가 그 곳의 평화를 수호하게나!"
"그래, 비록 우리가 몸은 떨어져 있지만 평화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뜨거운 마음이야 항상 함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하하하하하!"
그들은 손을 맡잡으며 뜨거운 눈물로 대원 B를 배웅하였다.

그리고 2년, 이미 안정세로 돌입했던 대구의 치안은 눈에 띄게 나아졌으며, 서울 또한 예상외로 큰 동란이 없는 안정된 시기를 보냈다. 그 즈음 대원 J가 모두를 호출하였다.
"바다 건너 아주 먼 나라에 불온한 움직임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네. 내가 직접 캐나다로 가서 그 곳의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니, 아무쪼록 대한민국을 잘 부탁하네."
대원 B와 대원 H는 대원 J의 너무도 글로벌한 안목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몸소 인천공항까지 대원 J의 변신복과 각종 최신무기를 공수하며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 그들의 눈빛은 이제 '주식회사 Show me the money'가 세계 전체의 평화를 책임질 때가 왔다는 책임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MB가 대통령이 되고, 광우병 사태가 발발하자, 대구와 서울에 흩어져있던 H와 B는 서둘러 출동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채 장전도 끝내기 전에, 이미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오는 것이 아닌가? 비록 최신식 무기와 변신복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가녀린 촛불 하나에 의지에 평화적으로 평화를 쟁취하고자 하는 그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대원 H가 B에게 말했다.
"그들 스스로가 평화를 지켜내는 저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이제 이 나라에서 우리 Show me the money가 할 일은 없는 것 같군."
그러자 B가 대답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네. 괴수가 쓰러지지 않았기 때문이지. 우리는 아직 이 땅에서 할일이 남았어."
그 말을 들은 H가 대답했다.
"음, 자네의 말에 일리가 있지만, 나는 저들에게 한 번 희망을 걸어보고자 하네."
의아한 B가 되물었다.
"그럼, Show me the money를 해체하자는 이야기인가?"
H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은 이 나라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었는가? 나는 평화를 원하는 더 무력한 이들을 도우러 떠날까 하네."
잠시의 침묵 후 B가 물었다.
"그럼, 자네도......"
H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나는 우선 필리핀으로 가 볼 생각이네. 그 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평화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다네."
B가 대답했다.
"그래. 이제는 우리가 세계를 짊어질 때지. 좋아. 극동은 내게 맡기고 자네는 동남아시아의 평화를 책임지게나. J가 나가 있는 북미의 정세가 날로 좋아지고 있다고 하니, 아마 그는 내년쯤에는 돌아올 걸세. 그때 우리 연구소에 모여 회포를 푸세나."
H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손을 마주 잡고 멀리 지는 석양을 내다보았다. 지고 있는 붉은 태양이 그들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그래서 대구 갔다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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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r 2008/08/10 20:35


1. 인사

안녕, 내 돌아갈 곳. 척척한 낮에도 바삭거리는 밤에도 언제나 거기 있는, 내 울 자리, 웃을 자리, 너무 오래 비워 둔 자리, 그럼에도 반짝, 원없이 반짝거리는 자리. 안녕, 안녕, 내 것을 나누어받기 위해 살아있는 작은 미소, 틈틈이 훌쩍거리는 눈꼬리 속에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온정이 있는, 안녕, 안녕 나의 작고 신비한 얼굴, 가슴, 둥그런 마음이 방긋 웃으며 함께 데구르르 구르자 두 팔을 벌리는, 내 부푼 설렘에서 사박사박 걸어 나온, 안녕, 안녕 나의, 나의, 소중한 나의, 내, 안녕.




2. 책장 넘기기

세상에 홀로 온당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 한줄의 근거로 증명되어지는 명제는 모조리 거짓이다. 압력 없는 진실, 공리, 자명한 이치를 모조리 의심하라. 누군가의 피나, 땀이나, 적어도 손때라도 묻어 있는 것들만 납득하라. 믿지 말라. 믿고 싶다면 손자국을 내라. 지문을 남겨라. 다쳐도 좋다. 진리에 베인 상처는 아물면 세상을 들어올리는 근육이 된다. 경계하라. 회의하라. 당연히 여기지 말라. 저울에 올라앉은 것들에 온정을 베풀지 말라. 그리고 눈을 감지 말라.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는 동안 모든 것은 허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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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r 2008/08/09 23:10


1. 국지성 호우

집을 나서려는데 갑작스레 쏟아진 큰 비에 당황하였다. 해저 도시의 천장에 구멍이라도 난 마냥 쏟아지는 빗물에 큰 우산을 받쳐들었음에도 다리가 흥건히 젖었다. 간신히 버스를 타고 가는데, 마장 쯤 오니까 빗줄기가 가늘어지더니 시립대 근처에 오니까 아예 땅바닥조차 젖어있지 않았다. 그 놈의 비는 왕십리 주변에만 내리고 있었던가 보다. 우산은 짐이 되었다.

그런 거 있다. 쏟아지는 곳에만 쏟아지고 주변은 흔적조차 없는 그런 거. 그런 사람도 있다. 24시간 1주일이 내내 밝은데, 어느 한 부분만 건드리면 갑자기 세상에서 제일 우울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또 그런 기억도 있다. 아무리 행복한 순간에 있더라도 떠올리기만 하면 쓴웃음이 나는 슬픈 기억.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영역만 벗어나면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는 필요 없는 우산처럼 우울도 슬픈 기억도 모두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이라는 것, 잊으면 나만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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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r 2008/08/08 20:00


1. 달라지지 않는 이야기

그저 몸부림일 뿐인데도 그것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이론이 아니라 경험으로 깨닫고 나면, 남자는 소심해지는 동시에 대범해진다. 이러면 안되지만 이럴 수 밖에 없다는 고리타분한 역설을 들고 나와 상대방을 울리기도 한다. 정말 사랑한다면 아니, 정말 사랑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답이 너무나 확실한 문제에서도 우선 제 상처 챙길 생각을 먼저 한다. 아프지? 그러니까 가란 말야. 따위의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상대를 밀어내는 동시에 괴롭더라도 상대가 더 버텨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상대의 마음에 날카로운 칼집을 내어 아픈 피가 철철 흐르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아 거기 피흘리는 사랑이 있구나, 있었구나. 하고 재확인하는 잔인하고도 미련스런 방법을 쓰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족족 궁색한 변명이 되고 말을 할수록 초라해지는 스스로를 느끼면서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 믿기 때문에 상대의 아픔을 모른 척, 눈물을 보지 못한 척 묵묵히 자기의 할 말을 마친다. 물론 스스로에 대한 다소 거친 비난을 통해 자신이 아직 뼛속까지 그리 나쁜놈은 아니라고 어필하는 객쩍은 이기심도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돌아서야 할 시간이 되면, 상대방의 마음에서 새어 나오는 슬픈 고름을 닦아 주지도 않고서는 그 따가운 상처위에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를 거칠게 둘러 버린다.
그것이 상대방을 더욱 숨조이게 하는 일임을 모르지도 않으면서. 어쨌든 마지막에는 아름답게 포장해야 하니까, 하고 무책임한 합리화에 안도하며 옷깃을 세운 뒷모습을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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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7]

Chronicler 2008/08/07 21:55


1. 가을은 먼 곳에

입추는 해가 더할수록 지랄스러워진다. 우리 손으로 그렇게 만들고 있다. 덥다고 ㅆㅂㅆㅂ 하며 에어컨 온도를 1도 낮추는 순간, 그 다음해 여름의 평균 온도가 1도씩 올라간다. ㅆㅂ이 ㅆㅂ을 낳고 그 ㅆㅂ이 또 ㅆㅂ을 낳는 셈이다. 그 긴긴 세월 물을 다스리고 땅을 일구는 데 아무런 문제없이 이용되어 오던 절기가 오늘날 이렇게 어이없는 개념으로 거듭난 것은 전부 우리 탓이다.




2. 폭풍간지의 원천

간지남의 인생은 모름지기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어야 한단다. 그런가보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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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6]

Chronicler 2008/08/06 23:45


1. 왜 여기는 미쿡이 아닌가.

전공서적을 한글판으로 사면 확실히 전체 성적은 약간 상승한다. 더 빨리 많은 내용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봤을 때, 전공서적은 원서를 구입해서 사용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중론이다. 그리하여 매 학기 교재를 구입할 때가 되면 코앞의 현실적 점수와 학구적 간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이다. 사실 진짜 문제는 이놈의 영어실력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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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5]

Chronicler 2008/08/05 23:33


1. 무시못할 고정 지출의 섹시함

충동구매가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충동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물건을 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감각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나라는 놈은 물건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원래 계획외의 돌발상황이나 가외지출 따위에 매우 인색하기 때문에 구매 직후에는 아니더라도 언젠가 한 번 쯤은 후회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놈의 충동구매를 끊을 수가 없는 이유는, 에잇, 담에는 좀 더 돈을 아껴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물건의 고혹적인 자태를 접하는 순간 격하게 지갑을 열어제끼고 싶은 동물적인 욕망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수컷의 마음을 때리는 천벌받을 섹시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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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r 2008/08/04 21:42


1. 대치

스님은 문 앞에 서서 목탁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가게 안에 앉은 학생들은 흥청망청 술잔을 들었다 내리기에만 열중했다. 이내 목탁소리가 커진다. 질세라 술을 마시는 이들의 목소리도 높아진다. 스님이 불경을 시작했다. 학생들의 말 사이사이 욕설이 섞이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스님은 반야심경을 외고 학생들은 아 저거 진짜 돈 천원 쥐어주고 쫓아버리지,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스님과 학생들 사이의 공간이 긴장감으로 바짝 건조된 느낌이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여도 균형이 깨져 버릴 듯한 뾰족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가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바깥의 회색 승복과 안의 찢어진 청바지는 그렇게 서로의 침공을 견제하느라 왜 목탁을 두드리기 시작했는지, 왜 술을 마시고 있는지를 더 이상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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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r 2008/08/03 20:45


1. 스페이스 바

점점 더 이기적이고 내 기분만을 생각하는 놈이 되 가는 것을 느낀다. 단지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하루는 매일같이 뒤꼭지가 너덜거리고 있다. 확실하게 나는 지쳐 있다. 선과 선 사이의 여백이 없었기 때문에, 쉽사리 넘어갈 수 있는 것들 하나하나에도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져 있다. 그러니까, 몇 번이나 이어진 장난전화에 짜증이 나 있는데 또 전화가 걸려와 받자마자 '에라이 씨발놈아, 전화 한 번만 더 하면 죽인다고 했지!' 라고 외쳤는데 수화기 너머로 영문도 모른 채 '미안하다' 하고 사과부터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어버린 것과 유사한 기분이다. 미안함과 짜증스러움이 덩어리져서 "미안하지만, 짜증이 나네." 라든가, "짜증나지만 미안해." 라든가 하는 말도 안되는 말이라 말로는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마는 것이다.




2. 어린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선생님, 이 가방이요~ 네. 어떻게 여냐 하면요~ 네에. 일단 이렇게 비밀번호를 맞추구요~ 네. 옆에 있는 이거를 딱 풀면요~ 네에. 이렇게 뚝 열리거든요? 그러네요. 그럼 이렇게 안에 집어넣구요~ 네. 다시 닫아서 비밀번호 돌리면요~ 네에. 그럼 이제 도둑은 못열어요! 우와~ 그러네요.

초등학교 1학년이라는 건 귀여움과 번거로움이 참 묘하게도 버무려진 나이다. 하고 싶은 말이 비온 뒤 대나무싹처럼 매일이 다르게 생겨나고, 하고 싶은 일은 일단 저지르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때다. 제 오빠를 가르치고 있으면 어떻게든 파고들어 뒤에서 지켜보고 싶어한다. 오빠 잘하는지 야단맞는지 볼거야. 이러면서 팔짱 딱 끼고는 빚 받으러 온 중년 아저씨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입 앙다물고 딴에 무게잡는 모습이 깜직하다.

오늘은 수업이 30분 일찍 끝나서 옥수수를 먹으며 학생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고 귀여운 꼬마 아가씨가 쪼르르 방으로 들어오며 방금 다녀온 곳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거기는 각종 곤충도 있고, 각종 곤충의 모형도 있고, 동물도 있고, 각종 동물의 모형도 있고.......그렇게 하나하나 손에 꼽다가 갑자기 킥킥 웃더니 제 오빠한테 쪼르르 달려가 귓속말로 뭔가를 속삭인다. 말할까? 말까? 말할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오빠가 뿔퉁맞게 대답하자 씨익 웃으며 나를 보더니, 선생님 오늘 거기서 무슨 벌레 봤는데요~ 걔네는 꼭 "꼬추"처럼 생겼어요! 란다. 게다가 제가 사내애였다면 "꼬추"가 있었을 자리를 가리키며 "꼬추, 꼬추" 라고 재확인시켜주기까지 한다! 귀엽잖아. 너무.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은 선생님이지요? 음, 선생님도 오빠처럼 학생인데요? 대학생요. 에이, 거짓말~ 진짠대요? 선생님도 공부도 하고 시험도 치고 학생이에요. 음, 근데 왜 우리 오빠보다 키가 작아요? 대학생인데?

......그러게요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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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2]

Chronicler 2008/08/02 19:01


1. 게임기는 안 된다.

나라는 놈은 사실 돈이 손에 쥐어지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인간형이면서도 평소에는 그러한 욕망을 잘도 갈무리하고 있다. 그러다 뭔가에 꽂히면 순간적으로 무분별한 동시에 방대한 양의 자본을 쏟아부어, 지나고 나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었다며 결국 후회하게 되는 것들을 사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게임기는 안 된다. 게임기는 안 된다. 게임기는 안 된다.



2. 싫다 싫다 하면 싫어지는 것

사실 우리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