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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사랑"은 단일감정이 아니라 복합감정이다. 호감, 존경심, 질투심, 소유욕, 성욕, 파괴욕..... 이루 헤일 수도 없이 수많은 감정들이 한데 엉켜있는 사랑은 걸쭉한 물약같은 것이다. 게다가 짜증나게도 사랑은 비선형이라 계산도 힘들다! 그러다보니 천 명의 사람이 있으면 천 개의 -혹은 천개가 넘는- 사랑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사랑을 구성하는 레시피는 너무도 독특해 자신의 연인과도 같지 않음은 물론, 자신조차도 똑같은 조합을 두 번 만들어낼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늘과 땅 사이에는 '사이'가 있다"는 시덥잖은 농담처럼, 나의 사랑과 너의 사랑 사이에도 반드시 '사이'가 있다. "우리의 사랑" 같은 건 유치한 거짓말 혹은 앙증맞은 가식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몫의 사랑을 한다. 철저히. 그러니 어떻게 사랑이 엇갈리지 않을 수 있을까! 두 개의 사랑을 가로지르는 그 간극은 불가피력이다. 마치 중력처럼.



역시 내 생각에,

"사이"가 중력이라면 "섹스"는 자이로드롭이다. 자유낙하가 선사하는 짜릿한 무중력의 맛. 인간이 중력에서 벗어나고자 날개를 염원하듯이, 연인들은 간극을 떨치기 위해 섹스를 찾는다. 확실히 줄어드는 것은 육체적인 간격만이 아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두 연인이 흡사한 감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데 섹스만한 순간이 있을까? 





이제껏 몰랐는데, 쓰고 나서 읽어보니 내게서 섹스 예찬론자의 냄새가 풍긴다. 엄밀하게 보면 "섹스"자체가 주제는 아니었는데. 죽음과 섹스의 친화성은 내겐 너무 어렵고, 들어도 잘 모르겠고, 아무려면 어떠랴 하는 생각마저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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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5]

Chronicler 2008/04/25 22:51


1. 굳빠이, 중간고사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지랄에 발광을 더해가던 중간고사도 어느덧 모두 끝나고 다시금 평화가 찾아왔다. 축복의 매서운 비바람은 창문을 때리고 다크서클과의 장기간에 걸친 애증이 넘실대는 커넥션을 곱씹게 되는 아름다운 밤이다. 지금껏 겪었던 것들 중 가장 피터지게 공부했던 시험시즌을 갈무리하며, 득템목록을 작성해보았다.

.
"여드름" x 2를 배양했습니다.

"늘어진 뱃살"을 장착했습니다.
"만성두통"을 획득했습니다.
"교수님을 향한 포효"를 익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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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r 2008/04/20 19:09


1. about 엄마

딸 셋 있는 집에는 항상 막내딸이 제일 이쁘다는 속설의 살아있는 증거.
미모에 걸맞게 곱디 곱게 자란 순수의 결정체.
직업은 커녕, 사회에 내놓으면 삼일 만에 좌초될 것 같은 가녀린 돛단배
본인은 아니라 극구 우겨보지만 내 보기에는 청춘의 한 복판에서도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해봤을 듯한 천연 기념물.
가진것도 없고 비전도 없는 남자 마음만 보고 덥썩 시집왔지만 그 마음 변할 줄을 미처 몰랐던 맹꽁이.
평생 고기 한 번 성에 차도록 뜯어보지 못하고 이빨을 몽창 잃어버린 슬픈 초식동물.
남편 부도에서 시작하여 이혼까지 겪어보고 더 이상 무슨 고생을 하겠나 싶었지만 백혈병까지 겪어버린 구슬픈 운명의 주인.
받아도 받아도 상처에는 익숙해지지 않는 예민한 과녁.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불효한 자식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한줌의 풀떼기.
미안함에 관한 내 기록을 매일 경신시켜주는 혹독한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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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r 2008/04/19 23:36


1. 오늘 대왕 세종 보다가

사극이라면 싸잡아 좋아하기 때문에 특별히 싫어하는 작가는 없지만 좋아하는 작가는 확실히 있다. 『불멸의 이순신』,
『황진이』, 『대왕 세종』의 윤선주 작가가 바로 그렇다. 그녀가 만드는 사극은 내용 전개나 등장 인물간의 대립구조가 멋드러짐은 물론이거니와 대사 하나하나가 너무 품격 넘친다. 상대적으로 이병훈 감독의 사극의 경우는 쉽고 현대적인 어법을 구사하는데, 이는 호불호의 차이겠지만, 내게는 윤선주 작가의 사극이 훨씬 아름답다는 느낌이다. 인정옥 작가에 뒤이어 존경하는 드라마 작가 리스트에 윤선주 작가를 올려놓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대왕 세종을 보면서 하나의 게임을 즐긴다. 바로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예측하는 게임이다. 결과는 백전 백패. 내 머릿속에서 나온 대사는 대왕 세종의 그것에 비해 단 한번도 우월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방송분에서는 약 다섯 줄의 대사를 정말 토시 하나 안틀리고 그대로 맞혀버렸다. 별거 아닌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걸까?



2. 너를 이야기하는 것은 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남의 행동을 분석하여 기정의된 카테고리의 분류에 짜 맞추어 설명하는 일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가장 명백히 드러내는 수단이다. 따라서 프로이트는 내가 아는 한 최고의 협잡꾼인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하나로 규정하는 방식으로 오히려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세상에 가장 널리 알린 선구적 개인이다. 내가 보기에 넌 이런이런 놈이야. 니가 저러저러하는 것은 요런요런 심리에서 나오는 행동이야- 따위의 충고는 역설적이게도 그 사람을 정의한다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쪽에 가깝다. 그러한 심리에는 그러한 행동이 뒤따르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 스스로의 행동양식에 관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남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의 한 실례일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오히려 남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를 파악하는 더 나은 방법이다. 성찰은 대개 스스로의 자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분석가라기보다는 자아에 가면을 씌워놓고 그것이 자아의 맨 얼굴이라고 납득시키는 탁월한 협상가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침잠만으로는 진실의 홍심을 꿰뚫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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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r 2008/04/19 11:59

1. DSP여 안녕

남상원 교수님의 그 핵심을 쿡쿡 찔러주는 날 선 포크 같은 명강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업시간에 졸거나 자거나 수면을 취하거나 꿈을 꾸거나 지그시 눈을 감고 상모를 돌리거나 혹은 침을 흘리거나 하는 일련의 행위에 열중하다보니 두 번의 퀴즈를 모두 백지를 내는 등, 등록금이 아까워 점심 먹은게 목에 턱턱 걸릴 지경의 만행을 저질러왔다. 그 결과 남들 다 쉽다는 DSP가 최고의 내게는 최고의 악당으로 둔갑해 멱살을 쥐고 흔들어제끼더라. 시험이 코 앞에 다가오자 십이분 삼십 초마다 이 과목 포기할까 하는 고민을 껴안고 그래도 지지말자 오기 부리며 DSP에만 매달린지 오 일. 졸라 많은 연습문제를 일일이 해치워가며 하나를 뚫으면 다음 부분에서 막히고 또 그걸 뚫으니 또 다음이 막히고, 다 뚫었더니 앞에 뚫어놨던 구멍이 막히는 말도 안되는 시추에이션의 반복 속에 에라이 차라리 어렵게 나와라 하는 심정으로 시험에 임했더라. 근데 막상 시험지를 보니 이럴 줄 알았으면 이틀만 공부하고 말 것을 싶을 정도로 쉬운 문제들이더라. 이뭐병, 시험 문제가 쉬워서 한숨이 나와본 건 처음인 듯.



2. 한 장의 치팅 페이퍼를 허용합니다.

DSP가 워낙 수식이 폭주하는 과목이기 때문에 교수님께서는 A4 한장 분량의 치팅 페이퍼를 써오도록 허락하셨다. 그래서 미친듯이 써봤는데, 왠지 한 페이지를 채우기가 힘들더라. 그런데 시험장에가서 현제형이 가져온 페이퍼를 보니 어디서 이 내용들이 다 나왔는지 엄청나게 우겨넣으셨더라. 역시 현제형은 대단해- 라고 생각하며 앞자리 앉은 분을 보니, 이건 무슨 쌀알에 반야심경 새기는 장인한테 의뢰라도 한건지, 인간의 손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작은 글씨체로 A4 한장을 다 채웠던데, 교과서를 통째로 집어 넣어도 그 글씨체로는 한 장 앞뒤로 못채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근데 결국 시험은 공식 달랑 세 개만 있으면 해결되는 수준이었으니 그 본좌분 얼마나 허탈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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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r 2008/04/16 21:45


1. 미워할 이유 업잖아

내게 미움 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팔 할이 낭비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일일이 다 마음에 안 들어하다가는 불평불만으로 한 세월을 접어야 한다. 딱히 내게 미움 받을 짓을 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오 할은 낭비다. 내가 미워하는 것만으로 상대에게 개선의 여지가 주어진다면 낭비는 삼 할로 줄어들지만 어쨌든 낭비다. 미워한다는 것은 감정의 소모가 큰 행동이다. 미워할 여력이 있으면 무시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절약이다.



2. 루트2는 말입니다.

저녁상머리에 앉았는데, 2층에서 하숙하는 형제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동생은 수학시간에 루트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했다. 형, 루트가 뭐야? 동생이 물었다. 동생한테 잘하기로 빌라에 소문이 자자한 형은 자상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형, 루트 2는 어떻게 구하는 거야? 동생이 재차 물었다. 형은 생각이 날듯말듯 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루트2는 1보다 크고 2보다는 작으니까 일단 1. 그리고 1.4보다는 크고 1.5보다는 작으니까 1.4, 이런식으로 계속 근사값을 찾아나가면 된다고 설명하는 듯했다. 그건 근사값이잖아. 그럼 그냥 루트2는 어떻게 구하는 거야? 형은 말문이 막히자 옆자리에 앉아있는 전자과 4학년 형님에게 화살을 돌렸다. 형님이 대답했다. 나는 계산기로 구하는데. 공대생에다 잘난척 좋아하는 Syo는 속으로 생각했다. 루트2는 비순환 무한소수기 때문에 소수점 아래가 끝이 나지 않는다. 파이가 3.14.......로 이어지는 것처럼. 결국 루트2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지구상에 한 명도 없다. 형이 대답해준 게 옳은 방법인 셈이다. 시덥잖은 밥상머리 토론은 계속 이어졌고 어느덧 밥을 다 먹은 Syo는 밥그릇을 싱크대에 넣으며 혹독한 한마디를 보탰다. 두 변의 길이가 1센티인 직각삼각형을 그린 다음 빗변의 길이를 자로 재라고. 과연 그 아이는 오늘밤 자를 들고 루트2의 세계로 먼길을 떠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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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r 2008/04/15 22:00


1. 그때 그들은 고민했을까?

우리가 보기에 성공과 실패를 담보로 한 한 판의 도박쯤으로 보였던 선택의 순간이, 그리고 몇몇 혁명적 성향을 띈 결정권자들의 무모하게 보일만치 급진적인 선택이, 우리에게는 기회비용을 놓고  심사숙고하거나 최소한 머뭇거리기라도 해야 마땅할 것처럼 보이는 그 기로가, 결국 성공적인 결정을 내린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그냥 당연히 그렇게 풀어나가야 되는 문제 정도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서 우매한 대중들에게 나눠줄 진실이 아까워,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기자신만을 믿고 건곤일척했다고 호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불확실성은 결국 노화되고 희석된다. 베일을 벗는데 걸리는 시간에 차이가 있을 뿐. 결국, 지금 이 순간 무엇인가를 내 손으로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은 현재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명징한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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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게 다 고독 때문이다

생각은 철저히 고립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순간 인간은 즉시 고독해진다. 두 명이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있다고 하지만 하나의 생각을 두 명이서 나눠 진행할 수는 없기 때문에. 존재에 걸쳐있는 그 필연적인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 인간이 선택한 다소 투박하고 부족한 대용품이 대화다. 소통의 과정에는 반드시 왜곡이 따르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인간은 효과적으로 고독을 해결하지 못한다. 그럼 대안은? 많은 사람들이 고독을 막아내는 방패로 사랑을 지목한다. 공감한다. 비록 고독의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사랑이 그나마 가장 효율적인 항고독제라고 생각한다. 고독의 이로움과 해로움을 떠나서, 혼자 고독을 감당할 수 없다면 내 처방전은 사랑이다.



2. 사랑이 변하는 이유

사실 고독의 유일한 해결책은 완벽한 소통이다. 한 점의 왜곡도 없이 나의 생각이 순도 100%로 상대에게 흘러가고 그 대가로 100% 순도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사랑 따위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안으로서의 사랑은 완벽한 소통을 흉내내려 한다. 그것이 당연히 불가능하다는 데에 사랑이 변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아니, 사랑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변한다. 믿었던 사랑이 나를 완벽하게 고립에서 끄집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랑에 실망하고 조금씩 사랑을 파국의 방향으로 옮겨놓는 것이다. 유통 기한의 차이일 뿐, 결국 쓸모를 다한, 아니 쓸모를 다하지 못한 사랑은 내버려지고 사랑의 사전에는 "유한성"이라는 불편한 용어가 자리잡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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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r 2008/04/14 23:41


1. 바쁜 척 하려면 상응하는 결과를 내 놓아야 안쪽팔리잖아

이를테면, 혼자서 뭔가를 만들어낸다거나, 여러 명이 모여서 어떤 프로젝트에 착수한다거나 하는 일을 할때,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니다.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들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과정인가? 그것도 아니다. 완성된 결과물로 수렴되지 못한다면 과정에서 얻은 것은 다만 "뭔가 얻은것 같다"는 느낌뿐이다. 중요한 것은 "과정 + 결과"다. 과정에서 얻고 동시에 결과로 꺼내놓지 못한다면 무조건 실패다. 우리는 수많은 실패와 역경을 넘어서 결국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배하곤 한다. 그들이 그런 우러름을 받는 이유는 1. 수많은 역경을 겪다, 2. 결국 마지막에는 성공하다. 이 두 가지의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로는 감동을 줄 수 없다.
세상은 꼬꼬마들에게 성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일의 도상에서 얻을 수 있는 많은 지혜를 강조하며 시도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웃는 얼굴로 등을 떠민다. 그래놓고 뒤이어서는 우리 모두가 결과 좌우되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경고한다. 꼬꼬마 동산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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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r 2008/04/11 20:04

1. 내가 사랑한 하루

가장 행복했던 그 시기의 한 저녁이 아무 이유도 없이 오늘 저녁을 내리덮었다. 도심의 한복판에 서도 건물들보다 가로수들이 먼저 시야에 잡힌다. 도로를 흐르는 자동차들은 마치 물방개나 무당벌레를 만난 것처럼 귀엽고 반갑다. 확인할 것도 없이 저 노을은 아마 그날의 노을일테지. 아직 아무것도 해야 할 일이 없고, 아무데도 가야 할 곳이 없고, 아무에게도 잘 보여야 될 곳이 없던 그 시절의 그 공기가 나를 스미고는 다시 한번 시간을 따라 회전을 겪으러 달려간다. 해야만 하는 것들이 희미해지는 저녁이다. 세상의 모든 진공관들이 소리도 없이 일제히 부서져내리는 듯한 저녁. 이렇게 가끔 추억이 오늘 위로 오버랩되면 세상이 얼마나 살 만한 것인가를 느낀다. 기억은 그렇다.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길 담 너머 집 마당의 홍목련 나뭇가지가 골목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가지 아래를 지나면 향기는 꽃 바로 아래서 나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스쳐지나고 나서야 코를 적신다. 사람의 삶 또한 지나고 나서야 등 뒤에서 향기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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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r 2008/04/10 22:03

1. 미안한 태피스트리

해줄 수 있는 것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아버지는 내게 미안하다. 나는 그 사실을 오히려 아버지의 당당함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버지라는 감투가 요구하는 허세와, 이미 내게 돌이킬 수 없는 흉터가 되어 기억속에 턱턱 박혀있는 그 과거 당신의 크고 작은 실수들에 대한 후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반 나아진 것이 없는 현재에 대한 허무가 잘 섞이지 못하고 술냄새 나는 안부전화 속에 덩어리져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내 목소리 또한 미안함으로 왜곡되어 필요 이상 밝아졌다. 통화는 이내 미안함의 실뜨기가 된다. 마음만 먹으면 절대 끝을 보지 않을 수도 있는 암묵적 사과의 교환. 우리 부자가 나누는 시간이 그렇게 어디서도 겪을 수 없는 특수한 순간이 된 지도 오 년, 그 동안 아버지와 내가 떠 놓은 실뜨개들은 아들보다 아버지라는 곳이 조금 더 가까운 나이가 되 버린 지금의 내게 이미 하나의 사는 무늬가 되어 버린 듯하다.
어쩌면 우리네 사는 동력은 미안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존재가 타인에게 미안해서 사는 사람, 혹은 부재가 미안해서 사는 사람. 역설적이지만. 어쨌든 산다는 것 허리춤을 뚝 잘라내어 그 단층을 살펴보면 아마 미안함이 촘촘하게 박음질 되어 있는 수예품과 닮아있지 않을까?


2. 눈은 어디로 가고 싶은가

하루에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12시간이 넘어간다.
득남할 수 있을까. 눈은 튀어나오려 안달이다. 어디로 가고 싶은걸까. 덩달아 배도 튀어 나오려 안달이다.
OS 숙제를 겨우 끝냈다. 사실 중급자 정도의 입장만 되어도 이 정도는 거의 "Hello, world" 수준인 것을. 실전에 약한 덕에 오늘도 눈알과 뱃살의 돌출을 적극 장려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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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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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통?
순수로부터 순수를 전달받는 소통이라는 것이 애초에 가능한 일이긴 할까? 결국 인식은 감각이고 감각은 신경세포를 흐르는 전기자극이라면, 오감을 넘어 육감, 칠감, 백감을 들먹여 설명하려 해봤자 모든 정보는 내게 인지되는 순간 이미 부분적으로나마 순수성을 잃는 것이 정상일텐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는 모든 과정은 어차피 왜곡의 도상이다. 과연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과학이 어떻게 철학의 도구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멋드러진 표본이구나.


2. 진짜 모습?
그런데 어차피 볼 수 없는 거라면,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진짜"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인지가 중요한 문제일까? 내가 그 사람을 통해 보려하는 모습과, 그 사람이 내게 보여주려 하는 모습이 같을 확률은 희박할테고, 그렇다면 나는 이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 올라 어느 쪽 장단에 맞춰 그 사람을 바라봐야 하는 걸까? 우리 사이에 놓여있는 뿌연 매질을 반드시 걷어내고 아무런 굴절 없는, 발가벗은 그 사람의 알맹이를 직시해야지만 그것이 "진짜" 사랑인 걸까? 광섬유는 신호를 100% 굴절시켜 정보의 손실을 최소화시킨다. 사랑을 굳건하게 끌고 가는 힘은 어쩌면 상대방의 본모습을 파악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굴절을 통해 상대방을 새로 빚어나가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3. 조제? 조제 + 츠네오
최소한 사랑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영화『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인어공주보다는 훨씬 뛰어난 작품이라고 내가 믿어 의심치 않는 이유는,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인어공주보다 능동적이고 굳건한 모습의 조제가 더욱 멋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인어공주 이야기에서는 그저 소도구일 뿐인 왕자에 비해 『조제....』의 츠네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살아 숨쉬는 사랑의 도식이기 때문이다. 스크린을 굵은 선으로 흐르는-그만큼 매력적인-조제의 시점에만 감정선을 두고 감상하면 이 영화의 참맛은 반토막밖에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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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yo

[20080409]

Chronicler 2008/04/09 20:15

1. 쪘어.

혼자 살다 둘이 살면 즐거울 일이 많고 배고플 일도 많다. 실제로 배가 고픈 것보다 귓속으로 "아, 배고프다" 라든지 "닭 보고 싶다." 라든지 "목구멍이 술을 부른다!" 라는 이야기가 흘러들어오면 이상하게 소화효소가 공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에라이 젠장, 먹자 먹어. 그러다 정말 몸매 한번 에라이 젠장 되었다. 요새는 샤워를 마치고 나면 거울 속에서 또 하나의 박곰돌이를 만나곤 한다. 한 때의 악몽이 재현되는가.



2. 다시 고삼이 된 것 같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우리 사는 게 그냥 하나의 몸부림 혹은 꿈틀댐으로 보일까봐 두렵다. 징그럽게 모여 앉아 비슷한 곳에 도달하기 위해 비슷한 방법으로 꼼지락대는 그런. 완벽한 그로테스크를 향해 조금씩 움직여가는 것이야말로 인간 군집이 진화하도록 정해진 방향인 걸까. 가끔씩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보아도 그 뿐. 그 뒤에 있는 것에 시선이 도달하지 않는다면 하늘도 그냥 하나의 벽이고 뚜껑일 뿐이다. 아무리 넓고 탁 트인 초원 한 복판에서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맞아도, 그냥 넓은 독방속의 죄수일 따름이다. 너도, 나도, 우리가 아닌 다른 모두도, 인간이니까, 이 시대를 사는 인간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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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7]

Chronicler 2008/04/07 22:09

1. 우리가 버리고 만 것들.

문득 그들이 가지고 있느라 내게 주어지지 않아야 했던 그 많은 돈들이 내 손에 있다고 해서 과연 내 씀씀이가 그들만큼이나 효율적일지를 생각해 보았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는 진리를 차치하고서라도 도대체 나라는 열기관은 겉보기보다 효율이 이렇게 떨어지는 것일까? 가령 그렇다. 돈이야 없어서 못 쓰고 그 덕에 내 인생이 이렇게 비효율로 흘러간다고 쳐도, 내게 치이도록 넘치는 하루 스물 네 장의 시간화폐는 과연 제 자리에 제대로 쓰고 있는 걸까?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조차 값지게 쓰지 못하는 인간이 더 많은 것을 쥐어 무엇하랴. 무엇을 쟁취하기 위해 무엇을 내던지고 있는지를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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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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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저편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임홍빈 옮김


조금이나마 독서에 경험이 쌓이고 나면, 작품만큼이나 작가에 대한 관심이나 평가를 욕심내게 된다. 이를테면 에쿠니 가오리의 글은 이러이러하고, 박민규의 스타일은 이런 식이고, 폴 오스터의 소설에는 이런 특징이 있다- 하는 식이랄까. 그런 맥락에서 보면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손에서 나온 글은 어떤 종류의, 어떤 내용의 것일지라도 절대 어색하지 않을 듯"한 작가다. 독특한 스타일이 있다기보다는 '글'이라는 것 전반에 뛰어난, 이를테면 딱히 이거다 하는 레퍼토리는 없지만 한식, 일식, 양식 등등을 모두 섭렵한 요리사의 느낌 같은 것 말이다.

독자와 서술자를 하나의 '점'에 녹여 방관자로서 소설에 참여시키는 동시에 소설에서 배제시키는 카메라 기법의 독특함은 차치하고서라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등장 인물들처럼, 이 책의 출연진들도 모두가 하나의 알레고리로 활약한다는 것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다.

내가 아는 하루키의 매력은 이렇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한 작품 속에서 너무도 많은 말을 한다. 그래서 그 수많은 말들을 총합적으로 묶어다가 하나의 결론을 내보고자 덤벼들면 결국 무엇도 얻기가 힘들다. 소설의 주제보다, 구절 속에서 내게 느껴지는 것을 건져 올리는 것이 어찌보면 더 수지맞는 장사처럼 보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누구라도 하루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