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대학 근처 치킨 가게에서 배달 알바를 하겠다고 하면, 나는 쫓아다니면서라도 당신을 뜯어말리기 위해 정성스레 도시락을 싸겠다. 한 달을 오토바이에 콜라와 튀긴 닭을 싣고 신나게 달리다 보면 이전에는 더없이 향긋하던 닭 냄새에 슬슬 구역질이 오르기 시작하고 거기서 한 달을 더 버티면 결국 내가 치킨을 배달하는 건지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 나를 배달하는 건지 도통 모르게 되는 것이 이 일이다. 치킨 냄새에 반응하는 후각세포를 깔끔하게 포기할 의지가 있다면 당신은 정체성을 사수하기 위한 힘겨운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다. 게임 끝, 치킨 월드는 평화를 되찾았다-라고 생각하는 경솔한 당신의 앞에 대망의 라스트 보스, '대학생 냄새'가 등장한다. 자, 배달의 용사여 닭다리를 움켜쥐고 돌격!
내 보기에 그들과 나 사이에서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차이는 단 하나, 부모님의 지갑에서 연간 천만 원씩 줄기차게 사 년을 뽑아내어 누군가에게 헌납한 대가로 하사받은 '학생증'이라는 이름의 교통카드를 지니고 있는가, 아니면 68가지의 양념이 버무려진 닭기름 냄새가 잔뜩 밴 고물 오토바이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가-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학생증과 나의 오토바이 열쇠가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순간, 학생증의 주인은 묘하게 우위에 서고 오토바이의 임자는 별 이유도 없이 죄스럽다. 시킨 지가 언젠데 이제 와요! 그들은 나를 만나면 반가운 마음을 항시 이런 식으로 드러낸다. 그럼 나는 그들의 환영에 몸둘 바를 몰라 고개를 숙이며 니네 학교가 지랄같이 꼬불꼬불해서요, 라고 생각하면서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라고 대답한다. 그리하면 그들은 과연 그 거룩한 학생증의 소유자답게 관대한 모습을 보이며 양념 반 후라이드 반 맞죠? 라고 하문하시고 나는 매번, 아니오, 저는 이종철인데요, 라고 대답해 올리고픈 충동을 느끼는 것이다.
그녀를 만난 것은 10월 초순이었다. 어떤 10월 초순이었나 하면, 나타날 시간이 한 달이나 지났음에도 코빼기조차 비추지 않는 이 죽일 놈의 가을을 직무유기로 고발할 방도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런 10월 초순이었다. 그런 10월 초순 중에서도 어떤 순간이었냐 하면, 여름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가, 올해 여름이란 자식은 아마도 하와이라든가 남아공 같은데서 밀입국한 놈이 아닐까, 까지 생각하고서는 애꿎은 하늘을 향해, 출입국 관리소 씨발, 엿이나 쳐 드삼! 하고 외치며 손가락질을 해대던 순간이었다. 눈앞에 정말 천국에서 지금 막 내려왔다고 해도 삼 초 안에 믿을 수 있을 것처럼 아름다운 그녀가 빙긋이 웃으며 나타났다. 한 손에는 A4 사이즈의 설문지를 들고. 출입국 관리소 만세.
안녕하세요, 여학생회에서 여성의 권리에 관해서 남성분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 중인데요. 잠시만 시간 좀 내 주세요. 감사합니다. 질문은 모두 열 개고요. 읽어보시고 매우 그렇다, 그렇다, 보통이다, 아니다, 매우 아니다 중에서 한 군데 동그라미를 치시면 되세요. 라고 말하는 또랑또랑한 그녀의 목소리 때문이었는지, 분명 그때 내 눈에는 설문지가 이런 식으로 보였다.
당신은 내게 첫눈에 반했습니까? - 매우 그렇다.
당신은 나를 만나기 위해 23년을 연애 한번 안 하고 기다렸습니까? - 매우 그렇다.
당신은 내 전화번호를 원합니까? - 매우 그렇다.
당신은 지금 나와 키스를 하고 싶습니까? - 매우 그렇다.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까? - 매우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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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가 죽으라 하면 당장 죽을 수도 있습니까? - 매우 그렇다, 에 동그라미 두 개.
매우 ‘매우 그런’ 설문지를 그녀에게 돌려주자, 방긋 웃던 그녀의 표정이 이내 매우 의아하다로 변했다.
정말로 여성 운동이 매우 역차별이라고 생각하세요? 네, 네. 그러시면서 정말로 여권 신장에 매우 찬성하시는 거예요? 네, 네. 제대로 작성하신 거 맞으세요? 네....... 이것 보세요. 진지하게 부탁드렸는데 이렇게 장난을 치시면-까지 그녀의 질책이 전개되는 순간, 내 눈에는 설문지가 이렇게 저렇게 보였단 말예요, 라고 당당하게 해명할 수도 없는 나는 하염없이 부끄럽고 민망하여 쥐구멍은 물론 콧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나머지 후에 내 평생 가장 모자란 행동으로 기록되는 짓을 하고 만다. 저기, 수고 많으신데 이거 드시고 하세요, 라는 도통 가당치도 않은 멘트를 날리면서 손에 들고 있던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그녀에게 내밀었던 것이다.
노천강당에서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학생들에게 배달되어야 할 치킨을 어쩌자고 그녀에게 선사했던 걸까. 외간 남자에게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선물로 받아 본 경험 같은 것은 전무한지, 그녀는 할 말을 잊은 표정으로 한참을 닭이 든 봉지와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깨달은 내 머릿속에 앞으로 있을 주인아줌마의 불호령과 알바비 삭감에 대한 걱정이 입력되기 시작하는 순간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 이거 혼자 다 못 먹어요. 저 쪽에 가서 같이 드시고 가세요.
요는, 이 짓도 이제 더는 못해먹겠군, 이라고 생각하는 짓도 이제 더는 못해먹겠다 싶을 즈음 그녀가 짜잔 하고 나타나 원투 스트레이트를 날린 것이다. 뭐야, 이 짓도 할 만하잖아,
라고 마음을 고쳐먹기를 한 달쯤이었을까. 가끔씩 걸려오는 ‘H대학 본관 앞 두 번째 벤치로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이라는 주문전화는 그녀와 나의 암호였다. 주인아줌마의 입에서 그 암호가 전달되면, 보통 거기까지는 도보로 배달하는 게 정상인데도 나는 재빨리 오토바이에 올라 가능한 최고 속력으로 달린다. 빨리 오셨네요. 네, 네. 이거 먹고 가시면 늦어서 주인아줌마한테 혼나는 거 아니에요? 아뇨, 괜찮아요. 네, 그럼 뜨거울 때 우리 어서 먹어요. 네, 네.
H대학을 다니는 학생 중 나를 ‘미세스 치킨 배달쟁이’ 라든가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 아니라 ‘종철씨’로 불러주는 유일한 여자와 마주 앉아 뜨거운 닭을 나누어 먹는 일은 사실 그리 뜻 깊은 시간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왜 사람들은 ‘후라이드 반 양념 반’ 보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할까, 에 대한 토론 같은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저 튀긴 닭을 배달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인 한 남자가 너무도 상냥하고 아름다운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보면 꼭 의미 없는 시간도 아니었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 ‘후라이드 반 양념 반’ 과 다르지 않은 것이 당연하듯, 그렇게 나는 ‘당연히’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토이 크레인의 3요소는 도전, 아쉬움, 희망이다. 그 즈음 그녀를 제외하고 내가 심취하기 시작한 유일한 것은 바로 이 토이 크레인이었다. 애초에는 오락실 같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여 ‘인형 뽑기’ 라는 식으로 즐겨 불리던 이 토이 크레인은, 황소개구리마냥 뛰어난 적응력을 발휘하여 이제는 슈퍼 앞에도, 술집 앞에도, 가끔씩은 정육점 앞에도 놓여있다. 물론 우리 가게 앞에도 놓여있다. 이 토이 크레인을 관리하는 것도 알바생이 할 일인데, 딱히 관리할 것도 없는 것이 아무도, 정말 아무도 이 토이 크레인에 동전을 넣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고단한 초등학생들의 코 묻은 동전을 수집해야 할 목적으로 태어난 이 기계덩어리는 그저 주문전화를 기다리는 알바생의 심심풀이 상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물론 열쇠를 꽂아 그 안에 있는 인형을 그냥 끄집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힘으로 크레인을 조작해 저 주황색 털실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눈이 큰 봉제 인형을 집어야만 떳떳하게 그녀에게 선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은 선물로 주기에는 좀 민망한 물건이었으니까. 그리하여 배달이 없는 시간을 나는 모조리 토이 크레인에 우겨넣었다. 오백 원을 넣는다. 띠리리링. 철커덕. 동전이 크레인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 움직임이 스틱에, 스틱을 조작하는 내 왼손에 연결된다. 오른쪽, 전진, 전진, 오른쪽 전진, 약간 왼쪽, 그렇지, 그렇지. 크레인의 위치는 절묘하게 맞아들었으나 풍 맞은 할머니 손아귀 마냥 힘이 없어 그녀를 닮아 눈이 큰 봉제 인형을 집기가 무섭게 떨어뜨려버린다. 봉제 인형이 주황색 머리칼을 나풀대며 제 자리에서만 오르락내리락 반복하기를 몇 회, 이번에도 결국 크레인은 내 컨트롤에서 벗어나 좌측 하단의 자기 자리로 돌아와 힘없이 축 늘어진다. 급료의 30%에 해당하는 양의 오백 원들이 다시 주인아줌마의 지갑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지만 조금도 아쉽지가 않았다. 토이 크레인의 3요소는 언제나 도전, 아쉬움, 희망이기 때문에.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대며 뒤늦게 찾아온 올해 가을은 부끄러웠는지 한 달 반 남짓 머무르다가 서둘러 H대학의 교정을 떠나버렸다. 가을이 떠나고 난 빈자리를 차지한 것은 기말고사라는 놈이었다. 대학생들은 부랴부랴 분주한 척을 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가게 매상은 점심이나 저녁보다는 열두 시가 지난 심야에 훨씬 짭짤했다. 그녀에게서의 암호가 끊긴지 두 달, 시험 준비에 바쁜 모양이지. 나는 더욱 토이 크레인에, 엄밀히 말해 그녀를 닮은 봉제 인형을 건져 올리는 데 전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그날 밤은 무척 추웠다. 두꺼운 패딩 파카를 아무리 단단히 여며도 어디론가 찬바람이 스며드는, 이상하게 추운 새벽 두 시였다. 오토바이에 ‘양념 반 후라이드 반’과 콜라 한 병을 싣고 동아리방이 모여 있는 건물을 향해 달리는데, 몹시 그녀 생각이 나는 것이다. 이 학교 안 어딘가에서 공부하고 있으려나, 아니면 자고 있으려나. 바람 안 스미는 따뜻한 곳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랬으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하며 영어듣기 동아리의 문을 똑똑 두드리자, 과연 바람이 안 스미는 따뜻한 영어듣기 동아리방의 문을 열어준 것은 놀랍게도 그녀였다.
어,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호들갑스럽게 인사를 건네는 나를 보는 그녀의 표정에서 적잖은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그 때, 그녀의 어깨 뒤에서 어, 자기 저 사람 알아? 하는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동아리방의 안쪽에 멀대 같이 키가 큰 사내 녀석이 반팔 티셔츠를 걸치고 탁자 밑에 사정없이 널브러진 종이 쪼가리와 책들을 주워 올리고 있었다. 오빠가 닭 시킨 거야? 과연, 여기는 지나치게 따뜻하군,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가 사내에게 물었다. 어, 내가 시켰어. 얼른 가지고 와서 앉아, 라고 그가 대답했다. 척 봐도 ‘대학생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자식이었다. 새벽 두 시의 동아리 방에서 그와 그녀는 단둘이 공부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자고 있었을까.
양념 반 후라이드 반 맞죠? 그녀가 물었다. 아니오, 저는 이종철인데요, 라고 대답했다. 만 이천 원짜리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받고 이만 원을 내밀면서, 여기요, 잔돈은 필요 없어요, 라고 그녀가 말했다. 과연, 여기는 지나치게 따뜻했고 나는 몹시도 추워졌다. 얼른 돌아 나왔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이상하게 추운 새벽 두 시였다.
미친 듯이 가게로 달려 내려와 오토바이를 팽개치듯이 던져 넣고는 그와 그녀에게 잔돈으로 줘야 했을 팔천 원을 모조리 오백 원짜리로 교환했다. 주인아줌마가 의아한 표정으로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관심을 거두고 튀기던 닭을 내려다봤다. 나는 씩씩거리며 토이 크레인에 다가가 열여섯 개의 오백 원을 한 번에 투입구에 밀어 넣고는 거칠게 스틱을 움켜쥐었다. 씨발, 좆같은, 좆같은, 까지를 내뱉고 나자 과연 좆같은 것이 그녀인지 그인지 나인지 아니면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인지 모를 지경에 이른다. 과연, 이것이 치킨 배달부의 운명인가, 튀겨진 닭들의 저주인가. 나는 스틱을 부러뜨리기라도 할 듯 거세게 좌우로 흔들어 그녀와 꼭 닮은 큰 눈의 봉제인형을 조준하고 부서져라 버튼을 강타한다. 실패, 실패, 또 실패. 이런 씨발, 나와! 좀 나와, 이 개 같은 년아! 그 때,
집었다! 좋아, 좋아, 조금 더, 밖으로 끌고 나와, 그렇지, 그렇지!
띠리리링. 결국 실패. 크레인은 그 개 같은 년의 인형을 거의 다 옮겨놓는가 했더니 막판에 놓쳐버리고는 좌측 하단의 제 자리에 돌아와 병신처럼 늘어졌다. 토이 크레인의 3요소는 실패, 절망, 그리고 비어버린 주머니였다. 아, 이놈의 좆같은 세상아! 토이 크레인의 상단부 플라스틱을 두 주먹으로 내리쳤지만 의외로 튼튼해 주먹이 아팠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토이 크레인을 적셨다. 68가지의 양념에 버무려진 양념 치킨이 67가지의 양념에 버무려진 양념 치킨과 얼싸안는 장면을 멀리서 훔쳐보는 후라이드 치킨이 된 기분이었다.
종철아, 주문이다! 한참을 그렇게 토이 크레인 위에 널브러져 울어대다가 주인아줌마의 호령에 눈물을 닦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그녀를 닮은 인형이 원래 놓여있던 자리에서 주황색 닭 인형을 발견했다. 벼슬은 없고, 얼굴의 반을 갈색 부리가 차지하고 있는, 몸 전체가 주황색인 닭 인형이었다. 파란색과 검정색이 들어간 플라스틱 눈동자가 왠지 슬퍼 보이는 그 녀석이 애처롭게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를 닮은 봉제 인형 밑에 깔려 숨죽이고 있었던가 보다. 종철아, 종철아! 네, 가요 사장님. 닭 인형의 눈을 외면하고 얼른 가게로 들어서려는 순간 분명 그 닭이 부리를 열고 내게 말했다.
집어 줘.
뭐?
집어 줘. 꺼내 줘.
뭐?
집어 줘. 꺼내 줘. 살려 줘.
너, 누구야, 닭 인형이야? 닭 인형이 나한테 말하는 거야?
아니오, 저는 이종철인데요.
아니오, 저는 이종철인데요. 그 녀석은 분명이 그렇게 말했다. 집어 달라고, 꺼내 달라고, 살려 달라고. 종철아! 배달 안가니! 주인아줌마가 가게 밖으로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나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닭 인형의 부리와 주인아줌마를 번갈아보았다. 아줌마가 잔뜩 화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호통을 치려는 순간, 내가 말했다. 아니, 닭 인형이 말했다. 아니, 내가 말했다.
사장님, 가불 좀 해주세요. 전부 오백 원짜리로요.
한페이지단편소설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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