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섹스 할 때 말이야. 무슨 생각이 드나?”
 
 갑작스런 나의 질문에 김이 입으로 가져가던 술잔은 그의 턱 근처에서 덜컥 제동이 걸렸다. 제아무리 음담패설에 도락이 있는 김이라고는 하나 아무런 복선도 준비운동도 없이 툭 튀어나오는 기습적인 질문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자, 이내 아차 싶었다. 젠장. 서론부터 깔아나갈 것을. 별다른 실적도 역량도 없고 그렇다고 뒷배가 있는 것도 아닌 그를 그 거센 구조조정의 풍랑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준 그의 눈치가 그에게 일러줄 것이다. 서설도 없이 본론부터 덜컥 끄집어낼 만큼 나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에 처해 있고 또 간절하게 그의 도움을 동냥하고 있다고. 칼자루는 이미 그의 손에 쥐어져 있으니 눈앞에 있는 이 처연한 치를 한껏 얕잡아 봐도 무관하다고.

 “아니 이건 또 뭐야. 허허. 강 대리 요새 잠자리에서 첫사랑 생각이라도 나는가본데?”

 술잔을 들이켜고 카아- 소리를 내뱉음과 동시에 빈정거리듯이 한 마디 툭 던진 김의 얼굴위로 사내에서 이미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본인은 모르는- 다소 비열해 보이는 미소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왼쪽 입꼬리를 살짝 내리고 오른쪽을 심하게 올려 이빨은 물론 벌건 잇몸까지도 사정없이 드러내는 그 미소는 언제 봐도 도통 정이 붙지가 않았다. 며칠 전 점심시간 경리 이양에게 음탕한 농담을 던지며 치근덕대던 김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그 미소였다. 그리고 어제 내 책상으로 와 빌려간 시디를 돌려주며 나 방금 옥상에서 이양 저년 따먹었다. 라고 내게 귓속말하던 순간에도.

 “차라리 다른 여자 생각이라도 나면 하던 판은 어떻게든 마무리 지을 수 있을 텐데.”
 “그럼 뭐가 문젠데?”
 “그게 말이야. 한참을 잘 하고 있다가도 배 밑에 깔려 있는 아내를 보고 있으면 갑자기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앉았지,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허. 그래서 하다가 말아버린단 말인가?”
 “대개는. 계속 하는 경우에도 끝까지 가 봤자 괜히 찝찝하기만 하더군. 끝나고 뒤따라오는 허무감은 말할 것도 없고.”

 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다른 건 몰라도 섹스와 관련해서는 이론과 실전 양면에 걸쳐 통달했다는 자신감을 지니고 사는 이 친구의 성격으로 보아 내 문제를 들은 이상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면 스스로 패배감에 빠져 허우적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게 바로 내가 평소에 그리 큰 친분도 없는 김을 카운슬러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음, 뭔가 좀 색다른 걸 해보면 어떨까?”
 “색다른 거?”
 “제수씨한테 수영복을 입힌다거나, 뭐 교복을 입힌다거나. 그렇지, 교복 괜찮군.”

 뒤이어 김은 해결책이랍시고 무언가를 계속해서 주절주절 내뱉기 시작했다. 돼먹지도 않은 방법들을 하나하나 일러 줄때마다 그는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 했다. 회사 옥상의 으슥한 곳에서 이양이 입고 있는 수영복이나 교복을 거칠게 찢어발기는 상상을 하고 있을까. 김의 얼굴에 그 미소가 은근하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여하튼, 평소와 다른 뭔가를 시도해 봐. 내 생각에는 권태 같군. 일상에 찌든 게지. 새로운 모습으로 시작 해 봐. 자세도 바꿔 보고.”

 김에게 상담을 청했던 것은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예상 외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입만 살았다’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비싼 술값을 지불하고 김이 꼴값하는 모습이나 지켜봐야 했을 뿐 믿음직스러운 해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다만 김이 코치한 대로 해 보고 꼭 결과를 알려줄 것을 다짐해야 했고 또한 첫 거래 기념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고 난 후 다음에 발생할 문제에 대해서는 그가 무상으로 AS를 해 줄 것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약속받았을 뿐이다.



 

 아내와의 섹스는 아무것도 건네주지 않는다. 오히려 상실의 도정일 뿐이다. 사랑, 열정, 쾌감, 흥분, 마지막으로 신음. 아내와 잠자리를 하면서 내가 잃어야 했던 것들을 차례차례 떠올려 본다. 남은 것은 이제 새털만큼 가벼워져 언제든 날아가 버릴 듯 불안하게 나부끼는 서로에 대한 부부로서의 의무감뿐이다. 나와 아내에게 있어 아직 서로가 부부라는 것을 증명할 길은 아무리 서로를 범해도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 우리나라 부부강간 입법의 미비점 안에만 자그마하게 남아있었다. 처량하게도 그랬다. 우리 아직도 부부지? 찌개를 끓이던 아내의 뒷모습에다 대고 질문했다.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밸브를 잠갔다.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끓던 찌개냄비는 이내 침묵했다. 아내는 두르고 있던 무늬 없는 회색 에이프런을 풀러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하자.
 혹시나 하고 준비했던 교복은 아내의 미간이 찌푸려짐과 동시에 단추 한번 열려보지 못하고 처연하게 바닥을 뒹굴어야했다. 침대는 유난히도 삐걱거렸다. 침대는 결혼식 전날까지도 구입해놓지 못한 유일한 가재였다. 나와 아내 모두 가구의 디자인이나 기능성에는 특별한 선호가 없었지만 침대의 경우만은 사정이 달랐다. 침대의 크기부터 높이나 스프링의 탄성, 심지어는 침대 머리 부분에 장식 되어 있는 부조의 무늬와 그 깊이까지, 우리는 어느 사소한 요인 하나에서도 의견일치를 볼 수 없었다. 결혼 후 첫 번째 부부싸움은 침대에 대한 선호도 차이라는 어찌 보면 허접하기가 짝이 없는 이유로 시작되어 이틀 만에 나의 패배로 끝났으며 아내는 자신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침대를 전리품으로 얻게 되었다.
 침대는 처음 나와 아내가 잠자리를 가지던 그 순간부터 내게 적대적으로 삐걱대기 시작했다. 나는 항상 그 소리를 참을 수 없었고 배 아래에 누워 있거나 혹은 배 위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 때때로 불만을 토했지만 그럴 때마다 아내는 자신은 한 번도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 말이 내 귀에는 침대가 삐걱대는 소리와 뒤섞여 견딜 수 없이 불편한 앙상블을 이루며 들려오는데도 불구하고. 침대의 비명은 세 번째 잠자리를 가질 때보다 네 번째에 잠자리에서 더 크게 들려왔고 역시 일곱 번째 아내를 안을 때보다 여덟 번째에 더욱 선명해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에게 삐걱거리는 침대에 대해 투덜거리는 짓을 그만 둘 수 있었다. 나와 아내의 삐걱댐이 침대의 그것을 압도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위로 올라왔고 의무적인 반복 운동에서 해방된 나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스스로가 놀랐다. 즐거움이어야 할 섹스가 내게 있어 힘겨운 싸움이 된 것이 언제부터일까. 회사 옥상에서 남몰래 나누는 김과 이양의 사랑은 어찌하여 열락이고, 내게 소유된 집에서 세상에 인정받은 나의 아내와 떳떳이 나누는 사랑은 어찌하여 체벌이어야 하는 것일까. 원인은 어디에 있나. 관계 중에 아내가 눈을 맞추기를 피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내의 성의 없는 신음이 내 정욕을 앗아가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무엇일까. 정체모를 남자의 손을 허리에 감은 아내가 그와 시시덕거리며 모텔로 들어가는 것을 내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일까?
 아내는 희열이 묻어있지 않은 거짓 교성을 내뱉으며 반복 운동을 계속한다. 나는 그 움직임에 따라 위 아래로 흔들리는 아내의 하얀 가슴은 볼 수 있지만 고개를 돌려버린 아내의 눈동자는 볼 수가 없다. 다른 곳을 응시하는 아내와의 섹스는 이미 껍질만 남은 내게서 오늘은 또 무엇을 앗아갈 것인가.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고 오로지 희락만을 남겨놓던 정상적인 섹스의 마지막은 언제였던가.
 문득 내 첫 번째 섹스가 떠올랐다. 상대는 지혜라는 비교적 흔한 이름을 가진 대학동기였다. 지혜는 내 첫 여자였지만 첫사랑도 두 번째 사랑도 아니었고, 나는 지혜의 첫사랑이었지만 첫 남자도 두 번째 남자도 아니었다. 지혜는 섹스가 끝나면 내 품에 안겨 비밀을 한 가지씩 듣고 싶다고 졸라대고, 그 대가로 그녀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해주는 귀여운 버릇을 가진 여자였다. 나와 지혜는 그녀의 하숙방 좁지만 삐걱거리지 않는 일인용 침대에서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는 뒤엉켜 지냈고 그런 관계는 나의 모든 비밀과 과거를 그녀가 알게 되어 결국 사정 후에 할 이야기가 바닥날 때까지 일 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그 후 지혜는 자신이 태생적으로 비밀이 없는 남자를 사랑할 수 없는 결함품이라며 이별을 통고했지만 그녀와의 섹스는 내게서 아무것도 약탈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지혜를 잊을 수가 없었다. 아내와의 섹스가 내게서 첫사랑의 기억을 뽑아 올려 허무에 던져버리기 전까지는. 갑자기 아내가 괘씸하게 느껴졌다. 내 과거를 삼키고 현재를 삐걱거리게 하는 아내의 규칙적인 상하운동이 밉살스러워졌다. 그래서 할당된 만큼의 시간을 내 배 위에서 채운 후 아무런 말도 없이 침대에서 내려와 샤워를 하러 안방을 나서는 아내의 뒷모습을 나는 치열하게 쏘아보았다. 침대는 아내가 내려오는 순간에도 여지없이 삐걱거렸다.



 

 회사 옥상에 몰래 사랑을 나눌 만한 으슥한 곳이 많다는 공공연한 비밀은 사실이었다. 혹시나 하여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지만 김과 이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그마한 벤처회사들이 칸칸이 입주해있는 빌딩은 층마다 흡연실을 필수로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옥상은 침과 씹다버린 껌, 필터만 남은 담배꽁초로 범벅이 될 슬픈 운명에 처해진다. 바로 지금 내가 서 있는 우리 건물의 옥상처럼. 건물주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옥상에 벤치를 설치해 놓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휴식공간은 구색을 갖췄다고 보는 것일까. 다 낡아 하늘색 페인트가 너덜너덜하게 매달려 바람에 펄럭거리는 70년대 공원에나 깔릴법한 벤치를 어디서 구해왔는지 참으로 용하다. 벤치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자 정면으로 몇 개의 높은 빌딩이 보인다. 안은 들어가 본적이 없어 모르긴 해도 아마 이 건물과 같은 벤처빌딩이리라. 안쪽이 비치지 않는 고급 유리로 외장을 통일한 커다란 신식 빌딩의 그림자가 누워있는 곳에, 독버섯처럼 여관과 모텔들이 자생하고 있었다. 아내의 필체로 쓰였을 것이 틀림없는 가공의 여자 이름이 마치 진실로 존재하는 이름이라도 되는 양 숙박부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을 그 모텔들이. 내가 아는 아내의 허리에 감겨있던 내가 모르는 남자의 손에는 결혼반지가 있었던가, 없었던가.
 두 달 전쯤의 일로 기억한다. 나는 사내 식당에 앉아 혼자 늦은 점심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멀건 국속에 든 당근을 신경질적으로 골라내고 있던 내 핸드폰을 울리게 한 장본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멀건 목소리의 여인이었다. 당신 아내가 지금 어디 있는 줄 알아? 여보세요-에 대한 리액션 치고는 너무나도 일반적이지 못한 그 여인의 응답은 젓가락으로 집고 있던 당근 조각을 식탁으로 추락시키기에 충분했다. 누구세요? 누군지는 알 것 없고, 지금, H빌딩 뒤 M모텔. 네? 여보세요? 딸깍. 점심시간은 이십분이 남아 있었다. H빌딩까지 제 시간에 갔다 오기는 빠듯하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뒤이어 생판 모르는 여인의 전화제보를 눈곱만치도 장난으로 여기지 않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혼 후 아내는 아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 단 한 번도 실수를 한 적이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아내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었다. 내부에서 진행되든 외부로 배설하든, 사람은 태생적으로 일탈 없이는 삶을 유지할 수 없게 생겨먹은 동물이므로.
 나중에 확인해 본 결과 ‘당기시오’라고 쓰여 있던 문을 힘차게 밀며 안으로 들어가던 모르는 남자의 옆에서 아내는 나에겐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웃음을 짓고 있었다. 격에 맞지 않게 고상한 연극을 입장권도 없이 몰래 훔쳐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나는 그들을 향해 욕지거리 한번 지르지 못했다. 이상하게 죄스러웠다. 삶이라는 것은 그들이 남녀 주인공인 드라마였고 나는 그들의 사이를 가로막는 징그러운 조연으로 태어났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참하게도 그 때 이미 드라마는 내 손을 떠나 있었다.
 멀건 목소리의 여인은 그 후로도 제보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나는 그 여인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H빌딩의 뒷골목으로 힘차게 달려가야 했다. 지금. H빌딩 뒤 아무개 모텔. 매번 이 두 마디가 그 여인이 하는 이야기의 전부일 따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억양이 퍽 낯익었다. 내게는 더 없이 매력적인 두 마디였다. 지금. 어디. 내가 그 장소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면 항상 모텔에 막 들어서려 하는 모르는 그 남자와 아내의 뒷모습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었던 걸로 미루어 보면 무섭게도 그 여인은 모르는 남자와 아내의 동선은 물론 내 위치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셈이었다. 처음에는 불길하게 느껴졌던 그 정체모를 여인이 궁금증의 대상으로 바뀐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지금. H빌딩 뒤 S모텔. 전화를 받고 그 장소로 달려가는 내 머릿속에 모르는 그 남자와 아내보다 멀건 목소리의 여인이 더 크게 자리하기 시작했던 것은 또 언제부터였을까. 보자기에 선글라스를 쓴 채 어느 전봇대 뒤에 숨어 모르는 남자와 아내 그리고 나를 모두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여인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모르는 그 남자의 부인인 것일까. 아니면 모르는 그 남자의 또 다른 여자일까. 나는 항상 그 여인의 정체가, 그리고 그 목적이 궁금했고 궁극적으로 그것이 내 부부생활을 지탱하는 마지막 부목이 되었다. 아내가 나를 떠나 그 모르는 남자와 공식적인 부부가 되어 더 이상 H빌딩 뒤 아무개 모텔을 찾지 않는다면, 멀건 목소리의 여인은 더 이상 내게 볼일이 없을 테니까. 아직은 이혼할 때가 아니다. 내색할 때도 아니다. 아직 그 여인의 실루엣조차 확인하지 못했으니까.
 
 “여어, 강 대리. 지금 옥상에 혼자 있는 거야? 여긴 혼자 올라오면 안 되는 거 몰라? 불문율이라구.”

 언제 올라왔는지 넥타이 없는 와이셔츠 차림으로 옥상 문에 기대 서 있는 김의 얼굴에는 예의 아니꼬운 미소가 가득했다. 요새 자주 보는듯한 저 미소.

 “그러는 자네 옆구리에도 이양은 보이지가 않는군. 벌써 버림받은 건 아닌가?”
 “하하하, 이 친구. 그러지 않아도 지금 올라오고 있는 중일거야. 3분 뒤에 만나기로 했으니까. 그래서 말이야. 강 대리 구슬픈 심사야 너무도 잘 알지만 자리 좀 비켜줬음 하는데.”
 “이런. 우리 사이에 그 정도 구경은 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섭섭한 걸?”
 “허, 이 친구 오늘따라 농이 좀 세군. 고민하던 일이 깔끔하게 잘 해결 났나본데? 어떻던가, 본인의 어드바이스가 약발이 좀 받던가?”
 “전혀. 교복만 불쌍하게 되었지.”
 “뭐? 그렇단 말이지.......”

 예상대로 김은 자신이 내놓은 방책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듣자 급히 침울해지는 듯했다. 진지하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김의 얼굴에서 동료의 고민을 시원하게 해결해주겠다는 의욕은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표정은 사냥감의 뒷발에 채여 자존심에 상처 입은 야수의 그것에 가까웠다. 딱하게도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뿌리에 자리 잡은 해충은 발견하지도 못한 채 마른 가지만 치고 있는 꼴이었다. 불쌍한 김은 2분 뒤에도 여전히 생채기가 그대로인 자존심을 움켜쥔 채 이양의 몸에서 처량하게 위안을 찾겠지. 이양은 오늘따라 신경질적인 김을 이상한 눈으로 올려다볼지도 모르지. 불쌍한 김. 불쌍한 이양. 안방 침대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어찌됐든 말이야. 좀 강하게 해보라구. 그게 다 자네 섹스가 약하기 때문이라니까. 제수씨를 정신도 못 차리도록 만들어 주란 말야. 아주 죽여 버리라구.”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가는 내 등 뒤로 김은 거의 포효했다. 언젠가 디스커버리 채널을 보다 그런 포효를 들은 적이 있다. 혈투 끝에 패배해 자신의 영역에서 밀려난 사자가 핏자국에 남루해진 갈기를 바람에 흩날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갈 곳이 없다고. 오, 불쌍한 김.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진정 아무것도 모른다. 죽여 버리라고?



 아내가 죽었다. 뺑소니였고 목격자는 없었다. 아내는 도와 달라고 소리 한번 쳐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빈소는 집에서 한 블록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B 대학병원에 마련되었다. 나도 죽은 아내도 인간관계를 자랑할 만큼 벅차게 살아온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나마 직장 동료들이 찾아오기 전까지 빈소는 마치 빈소가 아닌 듯 한산했다. 나는 의무적으로 그들에게 절을 했고 그들은 의무적으로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고 나는 또 의무적으로 눈물을 보여야 했고 그들은 또 의무적으로 내 어깨를 세 번씩 두드려주어야 했다. 모르는 그 남자는 찾아오지 않았다. 아내의 영정사진은 새하얗게 웃고 있었다.
 저녁이 되고 조문객들의 식탁에 편육과 술들이 차곡차곡 놓여졌다. 빈소는 조금씩 시끌시끌해지고 이내 곳곳에서 화투 패가 착착 감기며 짝을 맞추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왔다. 쌌다!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오늘 과장님 끗발이 잘 안 서시는데요? 에이, 씨발. 첫 끗발이 개 끗발이네. 빈소는 야유회가 되어 들썩거렸다. 자신의 죽음이 여흥거리가 된 것에 화도 나지 않는지 아내의 영정사진은 아직도 웃고 있었다.
 
 “이 벼락 맞을 개새끼야!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뭐, 이 걸레 같은 년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것 좀 보게.”

 아무리 죽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폈다고 해도, 상처한 남편이 듣기가 민망할 정도의 욕설이 빈소에서 나오는 것인 될 일이 아니었다. 화가 나 고개를 돌려보니 욕설과 함께 알루미늄 접시니 젓가락이니 소주병 따위를 던져가며 신나게 싸우는 것은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치들이었다. 이양의 화장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곰팡이처럼 노랗고 검게 뭉쳐져 있었고 김의 볼에는 접시 위에 있다 접시째로 이양에 의해 날아간 편육이 붙어 있었다. 상황은 명료했다. 김에게 이양은 노리개였고 이양에게 김은 사랑이었으리라.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지만 하필이면 이런 때 이런 장소에서 터지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내의 영정사진이 내가 교복을 건네주었던 그때처럼 미간을 찌푸렸다. 괜찮아. 아내를 위로했다. 저 치들이 회사 옥상에서 하던 짓을 여기서 재방송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훨씬 낫잖아. 그렇지? 아내의 영정사진이 다시 새하얗게 웃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조문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자 살금살금 장내로 스며들던 침묵은 기다렸다는 듯 빈소를 휘감았다. 그나마 아직 남아 술잔을 치고 있는 조문객들은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불현듯 외로움이 엄습했다. 죽기 전에 이미 먼지가 되어버린 애정이었지만 그래도 간 사람은 역시 나의 아내였고 확실히 우리의 생활은 씨실과 날실처럼 꼼꼼하게도 얽혀 있었다. 다만 그 무늬가 아름답지 못했을 뿐. 올이 반 이상 풀려나간 스웨터를 입고 맞바람에 선 듯 섬뜩한 삶의 추위가 느껴졌다. 옷을 더듬어 담배를 찾았지만 담뱃갑은 텅 비어있었다. 젠장, 흥분한 김에게 건네 준 것이 마지막 한 개비였던가.
 정확하게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는 아내의 먼 친척에게 빈소를 부탁하고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디스 주시죠. 아, 라이터두요. 손바닥으로 담뱃갑 아랫부분을 탁탁, 두 번 친다. 비닐을 벗기고 담배를 꺼내 물어 불을 붙였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보다 더욱 더 슬퍼해야 했던 그 의무감이 담배 끝에서 붉게 타들어 가는 듯 했다. 밤이지만 하늘은 묘하게도 맑았다. 내가 죽는 날에도 이런 식이리라 생각하니 죽기가 참 아쉬워졌다. 멀리 우리 집이, 아니 이제는 나의 집이 보였다. 급하게 나오느라 불 끄는 것을 잊었던지, 베란다 뒤로 보이는 거실은 커튼 사이로 얇은 줄무늬의 빛을 발하고 있다. 발인은 내일 아침으로 예정되어 있으므로 저 등을 끄지 않으면 내일 오후까지 거실에는 필요 없는 등불이 켜져 있게 될 터였다. 아내는 그런 것을 매우 싫어했다.
 집에 들어와 형광등을 끄고 차가운 거실 바닥에 몸을 뉘었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공간에 나는 이빨이 딱 들어맞는 나사못처럼 뿌리를 내렸다. 죽으려면, 이렇게. 헛소리가 절로 나온 덕에 오늘 들어 처음으로 살짝이나마 웃을 수 있었다. 밤마다 치근덕대던 내 모든 고민을 시원하게 싸안고 떠난 아내에게 말도 못할 고마움을 느꼈다. 이제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내와의 무미건조한 섹스도. 또 그것에 의해 잃어야 할 것들도. 쉼 없이 삐걱거리던 침대는 내일 아내가 묻히고 나면 안방에서 축출될 것이다. 그것이 나는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삐걱거리는 침대가 없어진다. 침대가 없어진다. 내일부터는 한동안 바닥에서 자야지- 하고 이젠 사형수 꼴이 난 침대를 조롱해본다. 돌이켜보면 내 취향에 맞든 아니든 침대는 애초부터 내게 필요가 없었다. 침대란 놈은 처음에는 그렇지 않더라도 사용하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삐걱거리게 되어 있다. 운명적이고 제도적이다. 다시는 침대에서 섹스를 하지 않으리라. 바닥에서만 여자를 안으리라. 절대 삐걱거리지 않는 바닥에서만.
 침대가 아닌 곳에서 뒤엉켜지는 나와 누군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느닷없이 커다란 흥분이 온 몸을 적셨다.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찾아 온 것인지, 주체할 수 없는 정욕에 이미 몸은 달아오를 데로 달아오르고 호흡이 저절로 거칠어졌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연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침대가 없는 섹스가 아닌가. 몸이 절로 이렇게 될 밖에.
 누군가가 필요하다. 절대로 어쭙잖게 혼자서 처리할 수준의 것이 아니다. 급히 머릿속을 뒤져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여자들의 이름과 동시에 그녀들을 안을 수 있는 가망성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도 아직 채 다 식지도 않은 아내의 시체를 지키고 있다가 침대를 들어낸다는 생각 따위에 발정한 남자를 안아 줄 여인이 있기나 할까?
 있다. 그녀가 있다.
 핸드폰을 열고 수년이라는 세월동안 한 번도 눌러 보지 못했지만 결코 잊을 수도 없었던 숫자의 배열을 입력한다. 아직 번호를 바꾸지 않았기를 바라며 초초하게 통화연결음에 집중했다. 가사가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그리고 물 흐르듯 연속적으로 내뱉어지는 랩 음악이었다. 지혜는 이런 음악을 듣는 여자가 아니었는데 하고 생각하는 순간 들려오는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가 준비해 두었던 인사말들을 머릿속에서 깡그리 삭제시켰다.

 “문지혜씨 번호가 맞습니까?”
 “응. 문지혜씨 번호가 맞아. 오랜만이네 자기.”
 “내 목소리 아직 안 잊었나보군.”
 “말하는 방식까지도 고스란히. 어찌됐던 첫사랑이잖아. 대외적으로.”
 “잘 살고 있나? 결혼은 했는지 모르겠군.”
 “매우 잘. 아직 미혼. 자긴 어때?”
 “이쪽도 매우 잘. 낮에 아내가 죽었지. 그것만 빼고는. 대외적으로.”
 “문장이 불편해지네. 그래, 자기가 내게 몇 년 만에 전화를 준 이유는? 그것도 상처한 날.”
 “섹스. 하고 싶다. 아니, 해야겠어.”
 “많이 대담해진 건 축하할 일이네. 하지만 자기도 알지? 난 비밀 없는 남자랑은 자지 않는다는 거.”
 “비밀. 있지. 아직 세상 누구도 모르는 비밀. 지혜가 처음으로 듣게 될 거야.”
 “당기는군. 좋아. 내가 그쪽으로 갈까, 아님 자기가 이쪽으로 올래?”
 “침대.”
 “뭐?”
 “지혜 집에는 침대가 있나?”
 “자기가 옛날 추억을 떠올리고 싶다면 그건 힘들겠는데? 내 집 생기고 나서부터는 침대 없이 살고 있어. 미안하게도.”
 “그럼 내가 가지. 어디?”
 “화곡동.”
 “근처에서 연락하지.”

 현관을 박차고 나와 문조차 잠그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내달린다. 6층은 섹스를 하러 당장 화곡동으로 달려 가야하는 몸 달은 홀아비에게는 불편할 정도로 높게 느껴졌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와 내 열쇠가 꼭 맞아 들어갈 회색 아반떼XD쪽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오늘 세차를 마치고 나서는 다음 출근까지 탈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핸들을 쥐고 액셀을 밟은 발에 힘을 넣었다. 화곡동. 지금 시간이면 이십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으리라.





 변호사가 되었다는 지혜는 예전과는 달리 제법 인텔리 분위기를 풍겼지만 안경을 썼다고 해서 그녀의 섹스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바로 시작한 키스는 서로의 변한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틈도 없이 섹스로 이어졌다. 지혜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무의식중에 세 번을 ‘이거다’라고 외쳤으며 ‘오늘 완전히 죽여주겠다’고 다섯 번 귀여운 으름장을 놓았으며 ‘삐걱거리지 않아’라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열세 번이나 했다고 한다. 이제껏 해 왔던 모든 섹스를 합친 것만큼이나 격렬했던 시간은 결국 끝이 났고 나를 뒤에서 안은 지혜는 예의 그 귀여운 버릇을 재확인 시켜주었다.
 
 “그래서 자기. 오늘은 어떤 비밀 이야기를 해 줄 건데?”
 “이번 건 지혜가 잠자리를 같이 한 남자들에게 들었던 어떤 비밀보다 더 충격적일거라고 보는데.”
 “그렇게 자신 있어? 믿기지 않는데?”
 “자신 있고말고.”
 “좋아. 그럼 이렇게 해. 나도 자기한테 이야기 해 줄 엄청난 비밀을 준비해 놨지. 들으면 보통 충격이 아닐걸? 내가 먼저 이야기 해 줄게. 그리고 자기 비밀을 듣지. 그래서 만약 내 비밀이 더 큼직한 놈이면 자기는 마누라 죽은 당일 날 옛 여자 집에 찾아와서 강제로 범한 몹쓸 놈으로 세상에 알려지는 거지. 어때? 딜?”
 “어지간히 대어인가 보군. 만약 내가 이기면?”
 “그땐 평생 아무 비밀도 묻지 않고 자기랑 자 주지.”
 “진심이겠지?”
 “물론. 난 변호사라구.”
 “콜. 시작해봐.”
 “좋아. 잘 들어봐. 지금. H빌딩 뒤 S모텔.”
 “뭐?”
 “아니, 목소리에 주목해서 잘 들어보라구. 지금. B 대학병원 장례식장. 관속.”
 “너.......”
 
 지혜가 품고 있던 비밀은 폭탄이었다. 저 멀건 목소리. 멀건 목소리의 여인의 정체에 대해 얼마나 많이 생각해왔던가. 아내의 불륜을 제보하는 멀건 목소리의 주인공이 아내 자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적은 있을지언정, 십분 전까지 내 품에 안겨 겨운 숨을 헐떡거리던 내 첫 여자라고 추측해 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더욱 놀라운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금. H빌딩 뒤 S모텔. 지금. 지금. 언제나 아내와 모르는 남자의 뒷모습을 정확하게 포착했던 그 무기질의 지금.
 자, 이제 자기 차례야. 놀라는 나의 모습에 지혜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듯, 금방이라도 나를 파렴치한 강간범으로 만들 수 있지만 봐 주고 있다는 표정으로 의기양양하게 웃는다. 분명 위험했다. 하지만 불쌍하게도 그녀는 졌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 마치 김이 그랬던 것처럼. 정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자, 졌지?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면 신고는 참아주지.”
 “아내가 죽었어.”
 “뭐야, 방금까지 나랑 뒹굴던 사람이 아내 이야기를 꺼내? 이제 와서 동정표라도 사겠다는 거야? 자기답지 않은데?”
 “뺑소니 사고였어. 목격자는 없었지.”
 “아까 이야기 해 줬잖아.”
 “아내를 친 차는 아반떼XD. 차 넘버는 7612.”
 “뭐?”
 “아내는 정말 놀랐을 거야. 자기를 치고 달아나는 차의 넘버가, 생에 마지막으로 보았을 네 자리 숫자가 자기도 잘 아는 숫자였으니.”
 “무, 무슨 소리하.......”
 “그리고 그 7612 아반떼XD는 지금. 화곡동에 있지. 어느 잘나가는 여자 변호사의 집 앞에.”
 “.......”
 “목격자는 없었어. 단 한사람도.”

 지혜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게임은 나의 승리로 끝났다는 것을. 그녀의 몸이 떨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백지처럼 하얗게 질려 입술을 파르르 떠는 지혜의 표정을 보니 다시금 온몸에 흥분이 돈다. 이제 매일을 찾아 올 거야. 너는 더 이상 내게서 아무런 비밀도 듣지 못하고 그 몸을 바쳐야 하겠지. 그리고 그때마다 지금 같은 표정을 지어야 될 거야. 내가 더욱 더 흥분할 수 있도록. 그렇지. 그렇게 말이야. 걱정 하지 마. 매일 죽여 줄 테니.

 잘 들어 봐. 어디선가,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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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단편, 침대

         
          아들아, 눅진하게 젖어버린 새우튀김처럼 척추를 옹송그린채 잠들어 있는 너를 본다 오늘도 쉰내나는 새벽이 나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녹슨 명찰을 박음질한다 아버지, 아버지라고 쓰여있다 그래서 나는 의심한다 마치 빌린 양복을 입고 모르는 이를 문상하는 것처럼 세상은 나를 아버지라 하지만 나홀로 의심한다 쉰내나는 새벽에,

        멀건 식탁에 고등어 한 토막 올려놓지 못해 대신 새벽의 한 끄트머리를 잡아끌어 이렇게 한 장의 반성문을 남긴다 '미안'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편지를 남긴다 내가 아버지라면, 나도 아버지라면 아들아, 어젯밤 소주잔에 말아 울컥 넘겨버렸던 수 많은 '미안'에 아직 배부른 것이 이 땅의 아버지들이다 한 시간 내 고된 노동과 십 분 너의 단잠을 바꾸는 것이 수지 맞는 장사라고 생각하는 이 땅의 아버지들이다.

        곡괭이를 싣고 트럭의 핸들을 잡으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네가 오늘 하루 나의 명찰이다 아들아, 어제보다 한 뼘 줄어든 어깨너비로 새벽을 힘껏 가르는 내 뒷모습이 오늘 너의 기지개를 만들 수 있다면 아들아 너의 웅크린 잠이 나의 명찰이다 나의 새 이름이다 아들아.





잘 안되네;;
에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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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신영복 지음/돌베개
          젠체하고 싶어서 몇 권의 동양 고전에 손을 댔던 적이 있습니다. 논어나 맹자, 대학 등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목만 겨우 기억할 정도로 재미 없었고 머릿속에 남은 것도 하나 없습니다. 고전 자체에 흥미가 있었다거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읽은 것이 아니었으니 그럴 밖에요. 그때 다시는 이런 책들을 손에 잡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시간낭비라고요.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지금은 당장이라도 도서관에 달려가 논어, 맹자, 노자, 장자 가릴것 없이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데로 뽑아오고 싶은 기분입니다.
 
           제자백가들이 사상을 피력하고 난세를 마무리짓기 위해 종횡하던 그때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사이에는 이천년이 넘는 시간과 훨씬 넓어진 세상이 가로놓여져 있습니다. 그런 탓에 오늘날 이런 옛 사상가들의 저서를 읽는 것은 재미도 없을 뿐더러 읽었다고 해서 현실에 적용시켜 진보를 추구하기에도 그 내용이 좀 동떨어져 있는 감이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의 조류 속에서 이런 경서들의 위상은 점점 이끼낀 골동품의 자리에까지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고전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분들께서 이러한 고전들이 현존하는 다양한 문제점들의 해결책 역할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계시지만, 그런 메시지들조차 자칫 사변적이거나 현학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입니다. 다수의 일반대중들-특히 젊은이들-에게 있어 이런 고전이나 철학의 영역은 연구자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 책의 가치가 빛납니다. 이 책은 "관계론적 관점"에서 고전의 의미를 해석하기를 주장하면서 자칫 낡고 고리타분하게만 느껴지기 쉬운 내용들을 더욱 친숙하고 현실감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당면과제들에 대한 대응자세를 좀 더 직접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존댓말로 서술되어 있어 고전에 대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딱딱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역시 신영복님!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되는 부분이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철학사상에 관련된 지식이 전혀 없는 이가 읽기에도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한정된 분량 탓에 넓은 내용을 얕게 다루는 많은 교양서들이 비해,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큰 부분들을 짚어 깊이 있게 해설하면서도 전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는 것 또한 이 책의 매력입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이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1. 동양고전을 읽고 싶은 생각은 있는데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2. 고전을 읽어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를 모르겠다.
3. 공자왈 맹자왈 이런 것들은 현실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오래된 사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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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음모의 세계사
조엘 레비 지음 / 서지원 옮김
358p / 휴먼앤북스


큼지막한 인물들이 벌이는 굵직굵직한 사건들만이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아니라는 것. 시대의 뒷편에서 아무도 모르게 부를 위해서, 혹은 이상을 위해서 암약하는 음모가, 첩보원들의 이야기는 비록 그것이 확실한 것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재미있는 읽을거리임에 틀림없다.

워낙 이쪽 방면으로는 관심이 없었던지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거나 심심한 감응을 받았다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소위 "음모이론가" 들의 구미를 충족시켜줄 만한 재미가 다분했다.

하지만 흥미 본위의 책이 지니는 단점이 다 그렇듯이, 읽고 나서는 남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 오히려 100% 허구인 소설을 한편 읽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경험치를 쌓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는 것. 그런 사실이 안타까워 항상 이런 장르의 책을 읽는것이 망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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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의 룰루
폴 오스터 지음 / 김경식 옮김
302p 열린책들

하나의 작품은 이야기와 매체의 결합에서 태어난다. 이야기는 사실상 무수하고 그것을 실어 나르는 매체 또한 다양하며 또 앞으로도 더욱 풍부해질테니 그 조합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할 것이다. 그런 작품 하나하나가 다들 가치와 특색을 가지겠지만 모든 이야기는 각각 거기에 어울리는 표현 방법이 있는 듯 하다.

만화나 소설을 영화나 드라마화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그런 리메이크가 항상 칭찬받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제작자의 역량에 달린 일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이야기가 어떠한 매체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에도 크게 좌우된다.

폴 오스터는 <다리 위의 룰루>의 가닥이 잡혔을 때 그것을 시나리오 형태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몇 가지 이유로 중도에 집필을 그만뒀으나, 룰루는 계속 그의 머릿속에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룰루를 소설로 옮기기로 마음먹고 몇 달간 덤벼들었으나 스스로 룰루는 시나리오를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결국 룰루는 애초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다리 위의 룰루>는 도서관 5층 인문과학실이 아니라 3층 체육예술실에 비치되어 있었다. 시나리오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 책을 빌려 오는 것이 망설여졌다. 더 이상 폴 오스터의 소설은 읽을 것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작가로 옮겨갈까 아니면 시나리오들도 마저 읽을까를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이 책을 뽑아들었다. 그렇게 망설였던 이유는 <빵굽는 타자기>에 실린 그의 초창기 희곡 두 편이 엄청나게 지루했고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리 위의 룰루>는 상당히 "폴 오스터"적인 시나리오임에 틀림없다. 작가 인터뷰에서 그가 룰루는 소설로 탄생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나리오는 상당히 소설스럽다. 재즈 클럽에서 색소폰 연주를 하던 중 아무 상관도 없는 이가 쏜 총격에 맞아 평생 그가 유일하게 몰두할 수 있었던 음악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주인공 "이지". 그리고 아무 이유도 없이 배회한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마법의 돌". 그 돌의 힘으로 이지는 처음 본 "실리아"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와의 짧고 뜨거운 사랑은 불의의 사건에 의해 흩어진다. 더욱 슬픈 것은 이 모든 것이 총에 맞고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가는 도중 끝내 죽어버린 이지의 마지막 상상이라는 것. 그리고 실제로는 그와 사랑을 나눈 적이 없는 실리아가 죽은 이지를 싣고 떠나는 구급차를 바라보며 성호를 긋는 마지막 장면.

이 책을 읽고 나면 왜 폴 오스터가 이 글을 소설이 아닌 시나리오로 만들 수 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영화의 스틸 사진처럼 머릿속에 감겨오는 그 짧은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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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1000books.net


빵굽는 타자기(Hand to Mouth)
폴 오스터(Paul Auster) 지음 / 김석희 옮김
299p. 열린책들

어린 시절부터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탐정소설인 "스퀴즈 플레이"를 펴내는 순간까지 그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겪은 많은 일들이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는 에세이 혹은 소설이다. 쉽게 장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그가 겪은 일들이 그의 소설 속의 주인공들만큼 파란만장하고 우연과 충동에 지배받고 있다는 것이 참 흥미롭다.

폴 오스터는 이 글에서 작가가 되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기 보다는 선택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일종의 재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겪어야 하는 정신적, 경제적 고충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 이외의 다른 경제활동에 일체 흥미가 없었던 그가 궁핍에 허덕이고 자기가 개발한 게임을 팔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예술로만 먹고 살 수 없는 예술가의 텅 빈 밥그릇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김연수 작가님의 <스무 살>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스무 살>에서 내게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던 부분은 도서관에서 마치 밥을 먹듯이 책을 읽었다는 대목이었는데, <빵굽는 타자기>의 폴 오스터 또한 긴 시간을 독서와 번역, 창작에 매달려 그의 재능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치열하게 문학에 매달려 살수 있는 자신은 내게 없고 또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작가의 반열에 올라 전국의 도서관을 찾아 다니며 서고에 꽂혀 있는 내 책에 일일이 짤막한 흔적을 남기고 싶은 바람이다. 재능이 검증되지 않은 처지에 그조차 부단한 노력이 없다면 쉽지 않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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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삼성을 떠나는 이유

          사람이 생각하고 그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다. 구체적인 이유는 여기서 언급할 필요가 없지만 나는 FTA가 싫고 지금 FTA에 대해 글을 쓰라고 하면 여전히 부정적인 의견의 글을 써낼 것이다. 하지만 만약 머지않은 미래에 FTA를 통해 엄청난 국부가 축적되고 그 이익이 내게까지 분배되어 내가 FTA 찬성쪽으로 의견을 바꾸게 되어 있다고 하자.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니까. 물론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내가 FTA를 열렬히 환영하게 될지 짐작도 못하고 있다. 다만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나는 앞으로 내가 바뀔 수도 있다는 이유로 지금 FTA 반대에 대한 생각을 글로 써서 내 블로그에 올릴 자격이 없는 것인가?

          나는 사회 초년생조차 아니고 조직에 대해서는 경험이 전무하고 그저 책이나 파대는 대학생이다. 저 '前 삼성맨'의 글을 철없는 투정이라 말씀하시는 수많은 사회 선배분들이 행여나 이 글을 읽으시게 된다면 이 글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의 우상숭배에 지나지 않는다고 때려대실지도 모를 일이다. 니가 사회 나와서 입사 해봐라. 그럼 다 알 게 될거다. 라고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실지도 모른다. 동의한다. 내 적응력이나 순응 정도로 봤을때 그저 동의하는 정도가 아니라 선봉에 서서 저 '前 삼성맨'을 질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의 나는 저 '前 삼성맨'이 사회에 던져 놓은 파문을 칭송하고 싶다.

          저 '前 삼성맨'이 피를 토하며 내뱉어 놓은 조직의 문제점이 틀린 것인가? 내 생각에 글쓴이가 제기한 문제는 "필요악"의 차원에서 볼 문제인 듯 싶다. 분명 조직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특성이긴 하지만 확실히 그것은 "문제"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 "문제"를 부정하고 극복해낸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만드는 것은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소모하는 문제고 또한 그렇게 해서 새롭게 태어난 조직의 생산성이 현 체제의 그것을 능가한다는 보장 또한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리스크 때문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음에도 그것을 필요악으로 보고 현재의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 현재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하지만 "필요악"을 채택함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필요악" 자체의 독성보다 더 크다고 해서 그것이 "악"이 아닐수는 없다.

          일선에서 일하시는 많은 분들이 글쓴이의 태도를 문제삼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하면 너무 건방진 말이고, 그냥 그렇구나 했다. 조직이 주는 압박을 꿋꿋이 견디며 사회, 경제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했다. 하지만 이 글이 조직에 적응하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많은 사람들을 비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글쓴이가 규탄하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라는 거대한 괴물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스스로도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사직서에 쓴 내용치고는 감정이 상당히 정돈되어 있는 편이다. 글에서 스스로 인정했듯이 글쓴이는 조직부적응자고, 또 조직안에서 변화를 유도해낼 수도 없는 패배자이다. 그가 최선을 다하고도 실패하고 사라졌는지,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바로 물러섰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어느쪽이라고 하든, 이 글은 "사직서"이다. 사직서는 사직의 이유에 대해 적어 제출하는 문서가 아닌가? 패자는 말이 없고 조용히 떠나는 자의 뒷모습이 아름답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자신이 조직을 떠나는 이유가(옳든 그르든) 분명히 있는데 그저 조용히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합니다"라고 입을 다물어야 할 이유가 이유가 어디있단 말인가?

          겨우 1년, 그것만으로 조직의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가를 성토하는 많은 사람들은 논점에서 약간 빗나가 있다. 그렇다면 1년이 아니라 10년, 20년을 조직에 몸담고 조직을 이해하게 되면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조직이 펼쳐진다는 것인가? 30년을 조직에 몸담고 조직을 많이 이해한 사람들은 글쓴이가 제기하는 문제점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 이러한 문제점 자체가 아예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글쓴이가 1년을 조직에서 일을 했든 10년을 일을 했든, 글쓴이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적응"이었을 텐데. 이 글에서 글쓴이가 얻으려 했던 것이 "적응"이었던가?

         솔직히 아직 조직사회를 모르는 만큼, 그것이 바뀌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은 없다. 어느쪽이 정이고 어느 쪽이 반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내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은 정도 반도 아닌 합이고 이런 저런 글을 읽다가 비평이나 자신의 의견 피력이 아닌 비난 수준의 글들이 보여 안타까운 마음에 끄적대고 있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조직이 다소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과 다르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조직에 대한 개인의 추구 관점이 다를 뿐이다. 그런 기준에서 볼때 글쓴이를 비판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내가 글쓴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의든 타의든 간에 그가 일으켜 놓은 이 파장 자체 때문이다. 치고 받아야 한다.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은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부터 강력한 공격을 받아야 더욱 옳은 방향으로 변화되고 강화되기 마련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더 많은 의견을 인터넷상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쪽이든 비난이 아닌 비평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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