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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무섭다;;


동행
폴 오스터 지음 / 윤희기 옮김
열린책들 252p



폴 오스터의 책을 보면 초기에 한국에 들어온 책들은 윤희기님이, 어느 순간 이후부터는 황보석님이 번역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황보석님의 번역이 마음에 드는 것 같습니다. 시작부터 여담입니다.

[동행]의 주인공은 갭니다. 개. 이 책은 사람말을 - 정확히 말해서 영어를 - 알아듣는 이놈의 개 미스터 본즈가 오랫동안 함께 살던 주인 윌리가 죽은 후 - 이 책의 원제인 '팀벅투'로 갔다고 표현되어 집니다 - 이곳 저곳을 떠돌며 경험하는 이야기를 반쯤은 전지적 시점으로, 나머지 반은 미스터 본즈의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폴 오스터의 작품들에 비해 스펙터클한 재미는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너무 잔잔하달까요.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개를 빌려와 인간의 이야기를 한다는 데 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까요.

또 이 책의 제목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원제인 [TIMBUKTU]는 사람이 죽은 후 가게되는 영혼의 피안을 일컫는 곳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행운이 따른다면 날이 저물기 전에 본즈는 윌리와 함께 <팀벅투>에 있으리라."라는 서술로 끝마쳐집니다. 그런데 번역과정에서 왜 [동행]이라는 제목으로 바꾸어썼을까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번역과정에서 제목을 동행으로 채택한 사람은 폴 오스터에 비해서 본즈와 원래 주인 윌리와의 끈끈한 관계에 역점을 두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윌리는 죽었지만 항상 본즈와 동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폴 오스터가 서술하지 않은 내용을 지어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폴 오스터가 진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에서 핀트가 약간 어긋난 느낌을 받았습니다. [폐허의 도시]때와는 다르게 제목 선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흥행을 위한 시도였던가요. -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제 폴 오스터가 몇 권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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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실로의 여행
폴 오스터 지음 / 황보석 옮김
-열린 책들- 230p


도서관에 비치돼 있는 폴 오스터의 책 치고 너무나 깨끗한 외관으로 제 손길을 유혹하는 이 놈을 뽑아들고 출판 날짜를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초판 1쇄가 2007년 3월 30일이군요! 신간이 나오면 대개 석달 이상 서가에서 모습을 볼 수 없는 현실인지라 이런 경우를 두고 심봤다고 일컫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폴 오스터가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혹은 인기가 없다는 증거인 듯하여 조금 씁쓸한 감이 있습니다.

이제껏 폴 오스터의 작품들을 연속적으로 읽고 있었다는 것이 정말 하늘의 뜻이기라도 한 듯, 이 책의 출판은 제게 더이상 시기적절할 수가 없습니다. 폴 오스터를 처음 읽으시려는 분들에게 이 책은 절대 추천해드리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절대 읽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 책을 제대로 읽으시려면 최소한 그의 작품 중 [뉴욕 3부작] [폐허의 도시] [환상의 책] [신탁의 밤] 까지는 경험하신 상태여야 할겁니다. 물론 기존에 나와 있는 그의 소설들을 모두 읽어봤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폴 오스터의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커다란 맥락은 물론 "우연성"이겠지만, 그것 외에도 폴 오스터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하여 글을 쓰는 것을 즐깁니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뭔가를 씁니다. 그것들을 통해 폴 오스터는 작가로서의 글쓰기에 대해 깊은 고찰을 보여줘왔습니다. 이번 작품은 그런 그의 노력의 총화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기록실"이라는 것은 그가 쓴 모든 작품을 의미하니까요. 작가 자신의 대리인을 내세워 자신이 만들어낸 주인공들과의 소통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기본입니다. 정말 충격적인 것은 자신이 창조한 인물이 자신을 기록한 보고서를 쓰고 있다는 결말이었습니다.


소설가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동시에 그것에 의해 창조되어지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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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미처럼 허리가 약한 이들
접혀 돌아와 차곡차곡 처박히는 곳
한숨 새어나갈 창문 하나 없는 것이
꼭 나 사는 모양을 닮았다
등 짓밟힌 지렁이마냥 꿈틀대는

오류로 나
오열로 살 날만 남았다면
다문 며칠 몇 시간이라도
이제 나도 전세에 살고 싶다
퇴근 종소리 속으로
사뿐 걸어 들어가
하이얀 벽지를 바르고 싶다
비 오는 날은 울컥
말끔히 청소도 해보고 싶다

빌려다 쓰고
제자리 되놓고 가는 것이
사는 거라면
내 이름 석자
다 쓰고 가는 날에는 꼭
전셋집에 놓아두고 떠나고 싶다
두  해마다 관뚜껑을 열어
내 이름 누운 자리를 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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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퀴즈 플레이
폴 오스터 지음 / 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320p


내가 지금까지 알아내려고 애썼던 것, 목숨까지 내걸고 그렇게 얻으려고 애썼던 중요한 정보는 알고 보니 모두 시시한 세부에 불과했다. 내가 배워야 할 교훈은 공짜로 주어졌다. 택시 운전사 J. 다니엘스는 사물이 때로는 겉보기와 똑같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고, 이중 스퀴즈 플레이는 번트가 때로는 홈런보다 강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이 메시지를 해독하여 채프먼 사건의 메타포로서 올바로 이해하기까지는 잠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진실을 아고 싶었다. 냉혹한 진실만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진실 - 진실은 그것을 보기 위한 상상력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288 p

지금까지 읽어본 폴 오스터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것은 [뉴욕 3부작]이지만, 가장 재미있고 스릴 넘치는 작품은 바로 이 [스퀴즈 플레이]인듯 합니다.

폴 오스터를 전부 읽기로 한 계획을 세운 건 정말 잘한 일이라는 확신이 점점 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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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로그래머다
김동준 김종호 원은희 유영창 이춘식 임백준 허광남
375p, 한빛미디어


저자 선정에서 기획의도가 분명하게 느껴지는 책입니다. IT의 각 카테고리에서 근무하고 있는 프로그래머들의 체험과 약간의 노하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네 번이나 정독했던 [7막 7장]이라든가, 너무 어릴적에 읽어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정말 재밋게 봤던 [나는 한국인이야] 라든가, 개인적으로는 참 맘에 들지 않았던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던가 하는 것들이요. 이미 앞서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의 열정과 고뇌가 담겨있는 그런 책들은 동기부여 측면에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지요.

비록 한 권 분량을 일곱 명의 저자가 나누어가져야 했기 때문에, 저자들이 하고 싶었을 수많은 말들을 전부 다 하지는 못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널리 읽혀지고 또한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어쩐지, [7막 7장]처럼 두고두고 읽혀질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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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도 수더분하게 생기셨음


 

철학 읽어주는 남자 295p
탁석산 지음
-명진출판-


스물 셋이면 그리 적은 나이도 아닌지라, 이제 나도 철학책 몇 권 정도는 읽어줘야 어디가서 좀 젠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근래들어 종종 후두부를 싸하게 강타하곤 했습니다. '그래, 지금처럼 시간 날때 아니면 언제 철학책을 읽을 수 있으랴' 따위의 생각이 분분히 고개를 쳐들어 어떻게 한번 철학에 발을 담가볼까 하는 생각에 네이버에 접속, 죽자고 검색을 때렸지만 검색을 하면 할수록 점점 어떤 철학책으로 시작해야 할지, 늪속으로만 잠기는 느낌이었습니다. 결국 검색만 하는 도중 흥미와 의욕은 종적을 감추고 '내깟놈이 철학은 무슨 철학' 하며 공업수학책을 펴들던 날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던 어느날, 아주 우연찮게 도서관 철학서가에서 뽑아든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전공자도 아닌데 철학사부터 시작해서 개론서를 중심으로 철학을 공부하는 건 똥줄타서 도저히 못해먹겠더라구요. 하시는 분들께 추천. 쉽고 덜 지루하며 실생활에 관련된 철학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거의 유일한-_-장점입니다.

하지만 철학 입문서로서는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쉬운 만큼 깊이가 없어, 이 책을 다 읽는다고 해도 철학적 지식을 얻는 것은 크게 기대할 바가 못됩니다. 또한 전체적으로 상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그냥 철학에 대한 탁석산님의 개인적 견해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가장 큰 장점이 가장 큰 단점으로 작용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철학은 교양이 아니다"를 철저하게 주장하고 있는 이 책 자체는 교양서입니다. 철학을 읽어주는 책이 철학이 아니라는 게 아이러닉하긴 하지만 그냥 철학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는 사람이 한번 쯤 읽어보면 철학 공부에 대한 흥미와 의욕에 불을 붙일 수 있을만한 책임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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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의 도시 286p
폴 오스터 지음 / 윤희기 옮김
-열린 책들-


폐허와 도시의 관계는 오묘합니다. 상식적으로 '도시의 폐허'는 존재할 수 있지만 '폐허의 도시'는 그렇지 않을테니까요. 실제로 이 책의 원제는 [In the country of last things]인 듯 합니다. '마지막 것들의 나라에서'라고 거칠게 해석이 되네요. 네이버 사전에서 검색해보니 "Last Things"라는 2어명사가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여러 사건을 의미한다고도 하는군요. 어떻게 보나 이미 종말 후를 나타내는 듯한 '폐허의 도시'라는 제목과 100% 매치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요. 하지만 오히려 한국식 제목이 이 책의 내용과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가 폐허일 뿐 아니라 그곳에 사는 인간들도 이미 하나의 폐허이기 때문입니다.

전형적인 디스토피아의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디스토피아가 과거나 미래의 것도 아니고, 전혀 새로운 세상의 것도 아니라 현시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어딘가에 있는 걸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폴 오스터에게는 굳이 먼 곳, 존재하지 않는 곳에 폐허의 도시를 자리시킬 필요성 따위는 없었겠지요. 폐허의 도시는 인간이 사는 모든 도시의 그림자일 수 있으니까요.

주인공인 '안나Anna'의 이름이 회문이듯이, 폐허의 도시에서 사는 모든 인간에게 삶과 죽음은 마치 서로의 꼬리에 꼬리를 묶은 두 마리 동물처럼 빙글빙글 돌며 뒤엉켜 있습니다. 어느 놈이 진짜 삶인지, 어느 놈이 진짜 죽음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지요. 그 도시에서 인간들은 죽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죽는, 생명을 판돈으로 한 모순된 게임에 영문도 모른채 참가하고 있습니다. 안나와 그의 친구들은 그 게임속에서 때로는 행복하게, 또 때로는 처절하게 살아나갑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기만 하고 생겨나지 않는 창조의 불모지에서 그들은 자신의 희망을 변화시킬지언정 절대 버리지는 않는 강인한 탈출의지를 보여줍니다. 도시를 탈출하기 위해 마지막 모험을 준비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작가의 카메라는 작동을 멈췄지만, 그들이 분명 탈출에 성공하거나, 혹은 실패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인생이요, 마술사의 검은 중절모자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명이라는 마술사가 모자에서 꽃을 꺼낼지, 비둘기를 꺼낼지 우리는 모릅니다. 마술사만이 알고 있겠지요. 하지만 그걸 모른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쨌든 마술사가 모자 안에서 무언가를 꺼낼 것이라는 걸, 그게 무엇인지는 꺼내보면 알 수 있다는 사실만 믿는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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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서 나온 박완서소설전집 7권입니다.

목차
엄마의 말뚝 1 - 11
엄마의 말뚝 2 - 63
엄마의 말뚝 3 - 113
遺 失 - 133
꿈꾸는 인큐베이터 - 183
그 가을의 사흘 동안 - 229
꿈을 찍는 사진사 - 279
窓 밖은 봄 - 347
우리들의 富者 - 381
■연보 - 433

하루에 두 권 읽는 일이 흔하지는 않은데, 오늘은 박완서day?

고등학교때였던가 중학교때였던가 가물가물한 옛 시절의 어느날이었습니다. 교정에 몇 되지 않는 책 많이 읽는 친구들 사이에 '싱아'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국어시간에 종종 들었던 거장 박완서님의 책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를 한다하는 친구들이 끼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는 의무감 반, 자존심 반에 저도 질세라 읽어보았습니다. 정말 지루하고 의미없는 책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바닥을 납작 기어다니던 그 당시의 독서 능력 탓이겠지요.

그 많은 싱아는 누가 다 먹었는지를 도통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동안 박완서님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언어영역 문제출제전용 작가"라는 말도 안되는 오명을 그 분께 씌우고 10대를 마무리 지었드랬습니다.

하지만 지구는 어떻게든 돌고 진실은 어떻게든 밝혀지는 법, 이 책에 실려있는 단편들은 그간 제가 가지고 있던 박완서님에 대한 불경한 오해를 한 큐에 걷어내고는 그 자리에 거룩한 신앙^-^을 심어놓았습니다. 그 복음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거장은 거장이로다." 입니다.

우리 문단에서 박완서님 만큼이나 다양한 현상과 문제에 스펙트럼을 뻗친 작가분이 계실까요? 이 책만 해도, 분단의 문제는 물론, 모성과 남녀차별, 낙태, 성적 욕망, 교사의 양심, 장애인, 인간의 양면성 등이 폭넓게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 범위와 깊이에서 마치 한 작가의 글이 아니라 여러 작가의 여러 작품이 실린 문학상 수상작 작품집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조만간 박완서님 전집을 정주행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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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남성의 인생에 있어 거의 고정적인 차이점은 -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는 - 결혼과 이혼이라는 사건을 겪기 전과 후의 생활방식이나 그들을 향한 사회적 시선이 얼마나 변하는가 하는 것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비록 남자와 여자가 철저하게 평등한 관계를 상정하고 결혼에 합의하더라도 이내 환경은 그들에게 무시 못할 압박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또한 사랑은 함께 해도 출산은 여성 혼자의 몫이라는 것 또한 본질적으로 완전한 평등을 구현하는 것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소설은 여자의 결혼과 이혼에 관련된 이야기를 어머니와 딸 두 주인공의 입장을 적절히 병치하거나 교차해가며 전개된다. 그들은 결혼과 이혼, 가정속에서의 행복과 독립체로서의 행복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 여성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남자 입장에서 여성이나 남녀평등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는 매우  껄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말을 잘못 꺼냈다가는 교양이 부족함은 물론 부도덕하다는 소리까지 듣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재수시절, 별 생각없이 꺼낸 가부장제에 관한 의견 - 그것도 가부장제를 옹호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식의 - 때문에 여학우들의 미움을 사 한동안 혼자서 밥을 먹어야 했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 책에서 개체적 평등을 추구하는 여성들이 자칫 가질 수 있는 문제점으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들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소설은 결혼과 이혼이 여성의 인생에 어떤 모습으로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데는 성공했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뒤로 미루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남자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부분을 고찰하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여성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이 읽기에도 썩 괜찮은 작품인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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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뭐냐고? 부르스 윌리스가 유령이야 ㅋㅋㅋ <- 이런 친구 때리기 너무 괜찮다.


감독
브라이언 싱어 Bryan Singer 감독

주연
스티븐 볼드윈 Stephen Baldwin :  마이클 맥매너스 역
가브리엘 번 Gabriel Byrne :  딘 키튼 역
조연
채즈 팰민테리 Chazz Palminteri :  데이브 쿠잔 역
케빈 폴락 Kevin Pollak :  토드 혹크니 역
피트 포스틀스웨이트 Pete Postlethwaite :  고바야시 역
케빈 스페이시 Kevin Spacey :  로저 버밸 킨트 역


반전 영화는 묘한 특징을 지닌다. 그 영화가 반전 영화라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로 보고 있는 관객들의 방심을 유도하다가는 급기야 강펀치 한방으로 카타르시스를 가져다 준다. 또 이미 반전 영화임을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묘한 도전심리를 불러일으켜 영화를 보는 내내 반전이 무엇일까를 알아맞히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게 만든다. 반전을 예측한 관객들은 그렇지 못한 관객들에 대해 묘한 우월감을 가지기 십상이고, 그런 우월감에 도취된 관객은 종종 영화를 '예측이 가능한 싸구려'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괜찮다. 반전 영화가 지니는 제일 큰 약점은 그 반전을 미리 알고 있을 경우, 그 영화 자체가 가지는 수준이나 예술성, 완성도 등의 요인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미없는 영화로 변한다는 것이다. 물론 반전을 알고 보아도 상당히 흥미롭고 가치있는 영화들이 가끔 있긴 하지만, 대개의 반전영화라는 것들이 반전 자체에만 너무 치중하느라 반전을 아는 상태로 보면 확실히 임팩트가 떨어진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 영화를 반전을 모르는 상태로 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며칠 전 네이버 웹툰인 [수사 9단 - 위기탈출 편]에서 "카이저 쏘제"라는 이름을 언급했는데, 그 편을 보고 나는 도대체 그게 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우연히 보게 된 이 영화에서 "카이저 쏘제"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순간, [수사 9단]이 겹쳐지면서 범인과 반전의 정체가 고스란히 드러나버렸고 갑자기 영화가 확 재미없어진 듯 하다.

누가 "카이저 쏘제"냐고? 포스터를 잘 보길 바란다. 가운데 있는 남자 바지 색깔이 너무 튄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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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의 밤 - 폴 오스터


그의 소설은 항상 당위에 앞서 우연이 운명에 있어 얼마나 커다란 영향력을 지니는지를 역설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우연은 폴 오스터의 모든 소설의 척추이며 그것은 비단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실재하는 현실에도 들어맞는다는 것이 폴 오스터의 생각인듯 하다.

고등학교때였던가, 국어시간에 이청준님의 '선학동 나그네'를 공부하면서 "액자식 구성"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기억이 난다. '신탁의 밤'은 그런 겹침 구조의 결정체다. 이 소설은 3중의 구조로 되어있고 또 그 구조를 통해 4중의 인물들이 얽혀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바깥쪽 구조, 즉 독자들이 1차적 세계로 판단할 수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소설의 화자인 "시드니 오어"이다. 그는 젊은 무명소설가로 오랫동안 병을 앓아오다 기적적으로 회복한 후 우연히 구한 포르투갈제 파란색 공책에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 소설이 바로 두 번째 구조이며 그 주역은 "닉 보언"이라는 남자다. 그리고 "닉 보언"은 '신탁의 밤'이라는 원고를 구하게 되고 세 번째 구조인 그 '신탁의 밤'의 주인공은 "르뮈엘 플래그"이다.

즉 현실의 작가인 "폴 오스터"가 쓰고 우리가 보고 있는 <신탁의 밤> 의 주인공은 "시드니 오어"이고 그 "시드니 오어"가 <파란 공책에 쓴 소설>의 주인공은 "닉 보언"이며 그 "닉 보언"이 우연찮게 구하게 된 소설 <신탁의 밤>의 주인공은 "르뮈엘 플래그"인 것이다. 즉 우리가 현재해 있는 세계까지 계산하면 4개의 인물 군상이 3개의 세계를 넘나들며 우연과 운명, 미래라는 실타래에 얽혀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구성이 가져야 할 필수 요건이자 가장 어려운 부분이 각 구조간의 긴밀한 연계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폴 오스터는 100점 만점에 120점을 받을만한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모두 다른 상황에 처해 있지만 사실은 하나의 맥락을 향한 씨실과 날실이 되어 독자에게 잘 짜여진 하나의 패턴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지만 우리의 내면에는 어느 순간에나 미래가 있다네." "존 트로즈"가 "시드니 오어"에게 해 준 이 이야기가 바로 폴 오스터가 우리에게 전해주려 했던 그 잘 짜여진 삶이라는 패턴이 아닐까?

폴 오스터가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마니아층에게만 호평받는 작가라는 것이 무척 아쉽다. 우리 나라 독자들이 딱딱한 미국식 문체보다 말랑말랑한 일본식 문체를 더 선호하는 것 자체를 두고 뭐라하긴 힘들겠지만, 그런 외형적 요인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정말 의미있는 소설을 읽고 느끼는데 거부감을 가지기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슬픈 현실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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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현실의 일부다



백남학술정보관에 있는 폴 오스터의 작품을 모두 읽을 계획을 세운게 한달 남짓 되어가고 그 동안 '미스터 버티고'에서 시작해, '브루클린 풍자극', '뉴욕 3부작', '타자기를 치켜세움', '환상의 책', '달의 궁전'을 읽었으며 오늘 '신탁의 밤을 대출해왔다.  

폴 오스터의 책 중에는 선 자리에서 다 읽어버릴 수 있는 책이 몇 되는데 서가에 선 채 다 읽고 그대로 꽂아버린 '타자기를 치켜세움'이나 지금 소개하는 이 '빨간 공책'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폴 오스터의 소설이 지니고 있는 장점이자, 보기에 따라서는 단점일 수도 있는 특징은 바로 "우연성"이다. 일반적인 현대소설이 될 수 있는한 우연성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폴 오스터의 작품의 경우 우연성은 소설의 시작을 열어젖히는 문이자 전개의 축을 담당하는 강력한 힘이다. '뉴욕 3부작'이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는 우연적인 사건에서 발단하였다거나, 달의 궁전에서의 주인공 3대의 관계라던가 하는 것들이 어떻게 보면 정말 현실성이 없을 정도로 우연에 큰 근거를 두기 때문에 폴 오스터의 소설은 일종의 '판타지'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폴 오스터가 이런 우연의 힘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연은 현실의 일부다. 우리는 늘 우연의 힘에 의해 형성되고 있으며, 전혀 예기치 않은 일들이 우리 인생에서는 엄청날 만큼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그는 오히려 우연을 최대한 배제한 소설을 꼬집는 듯한 당당함을 보인다.

이 책은 그런 폴 오스터의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하나의 "증거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책에 쓰여진 마치 "소설같은 사건"은 전부 그가 직접 경험하였거나 주변의 경험을 옮긴 것이며, 또한 그가 써온 소설들에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이함은 대개 전율을 동반한다. 이 책 속에 들어있는 에피소드 하나 하나를 읽는 내내 우연의 기이함에서 오는 작은 전율을 느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우연들은 폴 오스터의 인생에만 찾아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우연들을 겪었거나 혹은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냈을까? 우연을 단순히 이야깃거리로만 치부하지 않고 그 속에 든 감동을 차분히 끄집어올릴 줄 아는 폴 오스터의 안목과 재주에 질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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