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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가진다는 것

2010/12/04 06:47 from dyslexia

자유도 평등도 모두 필수 불가결한 가치지만, 그런 것들이 채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 인간이 가장 먼저 정복한 개념은 소유였다. 모든 분란의 태초에는 소유가 있었다. 네 것을 줄이고 내 것을 늘이기 위한 투쟁의 나선 위에 인류는 역사의 탑을 쌓아 나갔다. 시대, 혹은 기紀가 새로 이루어지거나 무너져 갈 때 최전방에서 총탄을 날린 것 또한 소유였다. 이렇게 인류의 역사는 소유관념의 변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어왔다는 것은 자명한데,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소유가 어떤 개념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일까?

『소유는 춤춘다』는 그런 소유의 개념이 역사의 물결 속에서 어떻게 변주되어 왔는가를 개략적으로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일종의 "소유사 입문"에 해당하는 책인데, 물론 소유라는 개념의 무게에 비해 책의 두께가 얇아 깊은 통찰을 얻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지만, 어려운 책의 바다로 뛰어들기 전, 가슴에 물을 묻히는 정도의 역할은 충실히 해내고 있다. 특히 소유를 판단하는데 주체, 객체, 상대, 사회 제반 환경을 고루 고려해야 한다는 충고는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놓치기 쉬운 부분을 잘 짚어주었다고 하겠다.

소유의 멱살을 가장 거세게 움켜잡았다고 역사가 인정하는 문건이 프루동의『소유란 무엇인가』라고 하겠다. "소유는 도둑질이다." 에서 시작하여, "소유는 불가능하다"를 거쳐 "소유의 대안은 자유다" 라는 결론을 통해 아나키즘의 기치를 높이 들어올린 저자의 거세고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문체가 또한 묘미다. 다만 논리를 다소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전개하고 증명하고 있으니-21세기인의 관점에서도 이해가 쉽지 않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가, 아이러니인가- 주장의 정합성은 빼어나다 할 순 없겠지만, 어쨌든 이 저작이 세상에 던져준 파문 자체는 기릴만 하다.

반면, 리처드 파이프스의 『소유와 자유』는 소유를 극단적으로 옹호하며 현재 우리가  취득한 모든 자유가 소유권을 확보한 데서 기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소유권과 자유를 놓고 어느 한쪽이 먼저 이루어지고 그 결과 다른 한 쪽을 얻을 수 있었다는 식의 일방적인 선후관계, 혹은 인과관계를 주장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 또한 맑스를 비롯하여 소유를 공격해온 이들의 사상 자체를 착각과 미망의 결과로 여기고 있는데, 그렇게 보는 이유가 사회주의 국가들의 패망했다는 데 있는 것도 따져 볼 일이다. 아직 맑스가 주창했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견실한 사회주의 국가는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그런 결과론적 관점으로 사상을 재단할 수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사적 소유의 극대화로 발생하는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은 커녕, 그 언급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데서 보면 150년 전에 나온 책들보다 오히려 조류에 더 뒤떨어져 있는 책이라는 느낌이 든다.

소유를 좀 더 삶 쪽으로 당겨와 생존 양태의 한 가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언제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는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을 "소유적 실존양식"과 "존재적 실존양식"으로 나누어 비교하고 있다. 소유적 실존양식의 폐단을 지적함과 동시에 존재적 실존양식이 바람직함을 보이며, 소유적 실존양식에서 존재적 실존양식으로 옮겨가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데, 역시 그 방법이 고풍스럽고 문장이 사뭇 아름답다.
 
그렇다면 결국 오늘날의 소유는 어디까지 이르렀을까.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 The Age Of Access』은 소유가 죽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판매자-구매자 구도가 상품과 서비스의 보유와 축적에 역점을 두었다면, 새롭게 열리고 있는 Server-Client 모델에서는 실질적 소유는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행위이며, 소유를 대체할 주자로 '접속'을 거론하고 있다. 기업들은 생산요소와 인력을 실제로 소유하기 보다는 아웃소싱과 리스를 통하여 부피를 줄이고 있다. 이제 상품이 아니라 개념을 파는 것이다. 또한 구매자들도 어떠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유하는 것보다는 그것들이 제공하는 편익을 경험하는 데 지갑을 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렇게 많은 철학자들이 지키고자, 혹은 없애고자 기를 써도 꿈쩍도 않던 소유가 경제, 과학, 문화의 발전 앞에 저절로 종말에 이르고 있다는 것은 그저 웃어 넘기기에는 너무 큰 의미를 지닌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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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03Fri-2

2010/12/04 00:33 from amnesia

너희를 잊지 않았다

모든 비루먹은 꿈들이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넋두리를 늘어 놓는다. 나는 버려진 지 육년입니다. 이 몸은 십오 년 되었다네. 게중에는 반년 쯤 된 파릇파릇한 녀석도 얼굴을 붉히고 앉아 있다. 제가 막내인가요? 잔뜩 겁을 먹은 반년짜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십오 년 되었다는 치가 말한다. 괜찮네, 곧 자네 밑으로 또 한 놈 들어올거야. 이래저래 버리고 온 많은 꿈들 사이에서는 어쩌면 나라는 놈은 이미 틀려먹은 자식이라는 합의가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사분의 일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내려 놓은 것들이 이렇게 많아서야 아무런 변명도 할 수가 없다. 좁아 터진 매립장에서 썩어가는 꿈의 시체를 더는 늘릴 면목이 없다. fünfundachtz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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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03Fri

2010/12/03 01:47 from amnesia
300

사랑이 여기까지 나를 데려 왔어요, 사랑이 여기에 내 목덜미를 걸어 놓았어요.

사랑은 언제나 cliff hanger. 이 별과 저 별 사이로 순식간에 나를 옮겨 놓지요.

사랑은 언제나 대관람차의 꼭대기칸, 때로는 작은 바람이 전체를 흔드는 것 같아도
 실은 결코 무너질 리 없는, 고공에 매달아 놓은 요람 같지요. 따뜻하고 고맙습니다.

지나온 시간들을 사근사근 주워 모아보지만 모든 추억들을 다 안고 오지는 못했네요.
두고 온 것들이 그대로 달이 되어 깜깜한 곳 헤집고 가야할 때면 길을 잡아 주기를. 

300에 0이 하나 더 붙을 때까지 그 누구도 우리의 사랑을 다치게 하지 않기를.
또한 우리의 사랑이 그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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